항목 ID | GC06601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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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希雍祠 |
이칭/별칭 | 성희옹 사당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 읍나무골마을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김소령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943년 - 성희옹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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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0년 - 성희옹사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4년 - 성희옹사 개축 |
현 소재지 | 성희옹사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 읍나무골마을 |
성격 | 사당 |
양식 | 겹처마 팔작지붕 |
관련 인물 | 성희옹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중종반정에 참여한 성희옹의 사당.
[개설]
성희옹사(成希雍祠)는 조선시대 문신 성희옹(成希雍)[1464~1526]을 모신 사당이다. 성희옹은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공신 3등에 봉해졌다. 원래 김포 고촌면 개화산에 부조묘와 묘소가 있었지만 성희옹의 처가가 귀곡리인 인연으로 1943년 후손들에 의해 귀곡리로 옮겨졌으며 1990년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정비되었다.
[위치]
예산군 신양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국도32호선을 따라 5㎞ 정도 가면 서쪽으로 귀곡리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길을 따라 1.5㎞ 정도 들어가면 읍나무골마을이 나온다. 읍나무골마을 뒤에 있는 야산의 남향 경사면 하단부에 성희옹사가 있다.
[형태]
성희옹사의 전면에는 솟을삼문이 있는데 중앙 상단부에는 ‘인정문(仁正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재실에는 1990년 15세손 백일(百一)이 ‘경오중추 후손백일서(庚午仲秋後孫百一書)’라고 쓴 현판 ‘영세재(永世齋)’가 걸려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전면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겹처마에 팔작지붕 양식이다. 영세재의 뒤쪽으로 내문을 지나면 창의사(昌義祠)라는 사당이 있는데, 사당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로 홑처마에 맞배지붕을 올리고 측면에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현황]
성희옹사 주변은 축사와 농가가 있다. 사당 입구 북쪽에는 1990년 17세손 시진(始震)이 찬하고 재실 현판을 서한 15세손 백일이 쓴 기적명비가 세워져 있다. 뒤편 남측에 창녕성씨 묘역이 조성되어 있고 상단부에 성희옹 묘소가 있다. 묘소에는 구비와 신비가 나란히 서 있다. 구비 앞면에는 ‘증호조판서 창성군 성공지묘(贈戶曹判書昌城君成公之墓)’라고 쓰여 있고 1997년 세운 신비에는 ‘정국공신 창성군 창녕성공위희옹지묘 배정부인 남양홍씨부좌 배정부인 임천전씨부좌(靖國功臣昌城君昌寧成公諱希雍之墓 配貞夫人南陽洪氏祔左 配貞夫人林川田氏祔左)’라고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