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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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褓負商遺品展示館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시량리 119-1] 윤봉길기념관 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희 |
이전 시기/일시 | 2001년 12월 - 보부상유품전시관 덕산면사무소 내 보부상유물전시관을 이전하여 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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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보부상유품전시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119-1 |
성격 | 전시관 |
전화 | 041-339-8232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는 예덕상무사의 보부상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유물 전시관.
[개설]
보부상유품전시관은 조선시대에 예산과 덕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보부상(褓負商) 조직인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전시관이다. 보부상은 등짐장수인 부상(負商)과 봇짐장수인 보상(褓商)을 아우르는 말로 부보상(負褓商)으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보부상(褓負商)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보부상이라는 용어가 문헌에 등장한 것은 조선 말기인 19세기 후반 무렵이며, 보부상이 언제부터 자체 조직과 운영 체제를 갖추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문헌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아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다만, 조선 후기 상업 발달과 관련지어 볼 때 장시 유통망이 전국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17세기 이후에 행상들의 조직화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9세기 중반에 들어 행상들에 대한 장세(場稅) 징수의 필요가 대두되면서 징수의 대상인 이들을 중간 관리자로 조직하는 등의 방식으로 국가적 관리가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본격적인 보부상 조직은 자유로운 상업 활동이 제한된 사회체제하에서 일종의 자구책으로 동료 간에 단결을 다지고 자체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근대에 접어들어 개항기 이후에는 일본 상인들의 침투 등으로 위축된 상로를 확장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점차 쇠락하게 되어, 예산·덕산을 중심으로 한 예덕상무사와 홍성·청양·대흥 등 여섯 개 군현의 원홍주육군상무사, 모시 생산지 여덟 개 군현의 저산팔구상무사 등 소수의 조직 형태만 남게 되었다.
[변천]
2001년 12월 충의사 경내에 윤봉길의사기념관을 새로 건립하여 옛 충의관 건물에 있던 윤봉길의사의 유물·유적을 이전하게 되어 비게 된 건물에 덕산면사무소 내에 보관·전시하던 보부상 유품을 이전하였으며 당시의 시대상을 재현한 디오라마(diorama) 등과 함께 전시하게 되었다.
[구성]
보부상유품전시관에는 예덕상무사의 유품인 인장 여섯 점, 인궤 한 점, 청사초롱 두 점, 공문 열여섯 점 등 일괄 3건 25점이 국가민속문화재 제30-2호로 지정되어 전시되어 있으며, 옛 시장 풍경의 사진과 재현된 모형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자료 전시를 통하여 농촌사회 유통경제의 핵심이었던 보부상의 유품을 사회, 민속, 상업경제사 등의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현황]
보부상유품전시관은 윤봉길의사기념관 오른쪽에 있으며 관람 시간은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이다. 연중 무휴에 관람료는 무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