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343 |
---|---|
한자 | 熊洞契 |
이칭/별칭 | 곰실마을 동계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화천3리 곰실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안경희 |
관할 지역 | 웅동계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화천3리 곰실마을 |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화천3리에서 마을의 대소사를 관할하기 위해 만든 조직.
[개설]
예산군 대술면 화천3리 곰실마을은 예로부터 반남박씨들의 집성촌이었으며, 웅동계라는 종계가 발전되었다. 곰실마을은 웅동(熊洞)이라고도 불리는데 곰이 살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곰실마을의 웅동계는 본래 친목 조직이었으나 연반계[계원 가족의 장례에 필요한 비용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계]와 같은 공조직을 흡수하여 산하 조직화한 특이한 형태로 화천3리의 의사결정 기구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웅동계는 화천3리 마을 반남박씨들의 종계로 시작한 것으로 보아 일반적으로 종계가 가지는 목적인 문중의 재산을 관리하거나 행사를 관리할 목적으로 조직된 것으로 추측된다.
[관련 기록]
본래 종계 문서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현대에 작성한 것만 남아 있다.
[내용]
동계의 행사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씨족사회의 전통과 일맥상통하여 웅동계의 총회는 매년 동짓달 열엿새 날에 열린다. 곰실마을에서는 총회날이 다가오면 정해진 순번에 따라 두 집씩 묶어 주가를 정하였다. 주가는 마을에서 주가(主家)라고 쓰기도 하는데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으나 총회의 주인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곰실마을에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말이다. 주가로 선정된 두 집에서 총회날 행사의 모든 먹거리를 준비하여야 하였다. 주가 전통은 계속 이어 오고 있으나 현재는 두 집이 아니라 네 집을 엮어 주가로 정하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네 집을 엮게 된 것은 두 집씩 정하니 순번이 너무 늦게 온다는 의견이 있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주가가 되는 것을 결코 귀찮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집에서 모든 먹거리를 준비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식당 등에 주문하는 등 사회적 변화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웅동계는 마을 총회를 겸하여 이장 선출부터 마을 대소사를 결정한다. 오늘날 웅동계 구성원은 노인회와 동일하기 때문에 노인회도 겸하며 모든 결산 내역을 보고하고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한편 곰실마을에는 상례를 위해 연반계가 존재하였으나 현재는 이름만 존재할 뿐 구성원이 없으며, 대신 출향한 자손들이 연반계를 이어 가고 있다. 해방 이후 시대가 바뀌면서 원활한 상례 진행을 위해 연반계를 조직한 것이라고 한다.
[변천]
웅동계는 화천3리의 친목 조직으로 출발하여 마을의 공조직인 연반계를 비롯해 최근 마을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 총회, 부녀회, 노인회 등을 흡수한 특이한 형태로 변화, 발전하였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존재하여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공조직을 흡수하고 연반계를 산하에 두어 명실상부 마을 최대 결정 기구가 되었다. 웅동계는 반남박씨 문중의 친목 조직에서 시작한 것으로 씨족사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종계로 시작하여 이어지다가 타성들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타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종계와 분리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견해도 유력하다. 웅동계는 6.25전쟁 후인 1953년 자금이 바닥나며 위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당시 이장이 가구별로 쌀을 거출하여 쌀 한 가마니를 만들고 장리쌀을 놓아 자금을 늘리고 조직을 재정비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 있을 경우 추입비(追入費)로 쌀 한 되를 받는다.
[의의와 평가]
웅동계는 화천3리 마을 사람들의 협동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조직의 변화 모습을 통해 사회적 변화 모습까지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