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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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金-揷橋平野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원회 |
[정의]
삽교평야는 충청남도 예산군, 당진시 등지에 걸친 삽교천 연변의 예당평야 중 예산군 서부의 삽교읍, 고덕면 일대의 평야를 말한다.
[삽교천이 만든 삽교평야]
삽교천(揷橋川)은 태안반도에서 가장 큰 하천으로 지방하천과 국가하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방하천으로서 삽교천의 유로연장은 44.6㎞, 유역면적은 275.79㎢이다. 국가하천으로서 삽교천의 유로연장은 58.6㎞, 유역면적은 1,649.39㎢이다.
삽교천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신풍리 상풍 마을 신풍저수지 위쪽 기러기재[345m] 부근에서 발원하여 장곡천(長谷川)이 되고, 금마면을 거치면서 금마천(金馬川)이 되고, 여러 지천들과 만나 북쪽으로 계속 흘러가면서 예산군 삽교읍에서 삽교천이 된다. 다시 예산군 신암면 하평리 부근에서 무한천(無限川)과 만나서 계속 북류한다. 아산시 인주면 대음리에서 곡교천(曲橋川)을 만나 아산만의 삽교호에 유입된다. 삽교천 본류에는 주요 지천인 곡교천, 무한천 이외에도 도고천, 남원천, 덕산천, 화양천, 신양천 등 많은 지천들이 유입된다.
삽교천 주변의 자연제방 발달은 미약하다. 구만리까지 조류의 영향이 미쳐서 상류에서 운반된 토사가 쉽게 하천 양안에 퇴적하지 못하고 바다로 유출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삽교천의 구만리 상류부는 질땅, 구만리에서 구양도에 이르는 충적지는 질땅과 갯땅이 섞인 보래땅, 소들강문은 갯땅이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삽교천은 하류 일대에 넓은 충적지를 형성하여 예당평야(禮唐平野)를 형성하고 있는 자유곡류 하천이었다. 하류 쪽으로 내려오면서 하방침식이 한계점에 이르러서 하천의 유로 변동을 가져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행천을 이루었다. 홍수 방지를 위해서 1980년대부터 진행된 하천 직강화 공사로 인공제방을 설치하여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삽교천 유역은 당진을 비롯하여, 천안, 아산, 예산, 홍성, 청양 등 3시 4개 군에 걸쳐 있다. 삽교천변에는 약 9m에 달하는 조수간만의 차와 협소하고 긴 만으로 인해 밀물이 들어올 때 이상 고조현상이 생기는 것 등의 영향을 받아서 간석지성 충적지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삽교천이 운반한 토사가 다시 조류에 밀려와서 간석지성 해안 충적지형을 형성하는데,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간척되어 넓은 답작지대가 형성되었다. 삽교천 중·하류 주변으로는 화강암을 기반으로 하는 저습지가 나타나며 이 일대를 예당평야라 부른다. 예당평야는 하류로 가면서 규모가 커지는데 대부분이 10m이내의 고도 분포를 이루고 있고 간석지를 간척하여 만든 해성퇴적평야(海成堆積平野)가 대부분이다. 서해안과 접해 있는 평야이기에 고도가 낮으며, 상대적으로 심층풍화를 받은 기반암이 개석되어 나간 저지대에 퇴적물이 쌓여서 형성된 모습이다.
특히, 삽교천 유역은 일찍부터 내포 지방이라 하여 하나의 지역문화권을 형성하여 왔다. 이 내포 문화권의 교류는 주로 삽교천과 아산만을 통하여 경강을 무대로 하여 이루어졌다. 내포 지방의 젖줄로 불리는 삽교천은 조선시대 이래 범근천으로 불리던 하천으로 예당평야의 수원지 역할을 하여 왔으며, 내포 지방의 심장인 가야산과 함께 내포의 상징이다. 삽교천 주변에는 넓고 비옥한 충적평야지가 전개되어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삽교천 유역은 아산만과 바닷길로 통하여 수운교통이 편리하고 소금, 해산물, 곡물이 풍부하여 한양의 경창과 교류가 빈번하였다. 따라서 삽교천 연변에는 고려시대 이래 수많은 포구들이 생성되어 일제강점기까지 번성하였다.
조석은 삽교천은 예산군 덕산면 구만리(九萬里) 포구까지, 무한천은 예산읍 창소리(倉所里) 포구까지, 안성천은 평택시 팽성읍 신호리(新虎里)까지 미쳤다. 따라서 이곳까지 배들이 다녔다. 즉, 구만포가 삽교천의 가항종점이다. 구만포는 1868년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 도굴사건으로 유명한 오페르트(Ernst Jacob Oppert)의 그레타(Greta)호 최종 상륙지점으로 유명한 포구이다.
삽교천은 예당평야 일대에 관개용수를 제공하며, 아산만과 만나는 하구에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를 연결하는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어 있어 현재는 커다란 인공호수로 변하였다.
[자연이 만든 삽교평야의 아름다운 경관]
예산군, 당진시 등지에 걸친 삽교천 연변의 예당평야 중 예산군 서부에 있는 삽교읍, 고덕면 일대의 평야를 삽교평야(揷橋平野)라 부른다. 즉, 삽교평야는 차령산맥 북쪽 수계권의 하천인 삽교천의 수계에 있으며, 삽교천이 예산군의 서부의 삽교읍 용동리, 성리, 고덕면 용리, 구만리, 상장리, 대천리 등지를 흐르며 넓게 펼쳐진 평야이다. 면적은 약 2,650만㎡이다.
삽교평야는 대체로 저위평탄면(低位平坦面) 위를 흐르는 삽교천 본류 및 지류 연안의 범람원에 형성된 하성충적평야(河成充積平野)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부는 10m이내의 고도 분포를 이루고 간석지를 간척하여 만든 해성퇴적평야이다.
평야지대를 흐르는 삽교천을 따라 제방이 축조되어 유로가 고정되었지만, 일부 지류들 가운데는 자유곡류의 형태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저위평탄면의 일부는 주로 과수원과 밭으로 이용되거나 삼림으로 덮여 있기도 하다.
삽교평야 일대에서는 몽리면적 약 1만㎡에 이르는 예당저수지가 완성된 1964년 이후 예당저수지의 맑은 물과 풍부한 용수를 바탕으로 벼농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또한, 1979년에 삽교천의 하류에 삽교천방조제가 완공된 후 일대의 홍수 피해가 줄어듦에 따라 대단위의 벼농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삽교평야의 기름진 땅에서 생산된 벼는 최신 설비의 미곡종합처리장에서 가공 선별되어 고품질 청결미 ‘황금쌀’로 출하된다. 삽교읍, 고덕면, 신암면, 오가면 등에 형성된 구릉지에는 과원 형태의 사과밭이 많이 조성되어 있다.
삽교평야는 예산십경(禮山十景)의 하나일 정도로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삽교읍 꽃산 봉우리에서 내려다보이는 이른 가을 아침 햇살에 비치는 넓은 삽교평야는 마치 ‘출렁이는 황금물결’과 같아 장관을 이룬다.
[삽교평야 일대의 관광명소]
삽교평야 일대는 전통적인 예산군의 관광명소로서 가야산, 수덕사, 충의사, 추사고택, 예당관광지, 임존성, 의좋은형제공원, 예산황토사과, 예산오미(禮山五味) 등으로 인하여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절경을 자랑하는 가야산은 차령산맥의 한 줄기로 덕숭산도립공원의 일부에서 뻗어 나간 줄기가 솟구쳐 일으킨 산이다. 규모는 작지만 주변에 많은 문화유적을 간직한 명산으로 잘 알려졌다. 신라 때에는 가야사를 짓고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까지도 덕산현감이 봄가을로 제를 올렸다. 가야산은 높이 600m급의 산으로는 놀라운 고도감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내륙의 산과는 달리 바다가 가까운 곳에 있어 상대적 해발 높이가 높기 때문이다. 가야산의 능선을 따라 피어 있는 진달래와 억새풀은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대개의 산행은 남연군의 묘[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에서 계곡으로 들어가 석문봉에 가까운 안부에서 석문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로 시작되거나 마무리된다. 석문봉은 가야산 봉우리 가운데 가장 바위가 많은 봉우리이며, 석문봉에서 옥양봉으로 가는 능선을 올라가게 되어 있다. 석문봉이나 옥양봉 산행은 1시간도 걸리지 않으며, 안내판과 등산로도 잘 정돈되어 있다. 가족과 함께 등산 후 인근의 많은 문화유적도 감상할 수 있다.
천년고찰 수덕사는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사찰이다. 백제 15대 침류왕 2년[358년]에 ‘수덕각시’라는 관음화신이 중생제도를 위해 창건했다는 전설을 지닌 고찰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49호로 지정된 수덕사 대웅전은 형태가 장중하고 세부 구조가 견실하고 치밀한 우수한 건축물이다. 고려 25대 충렬왕 34년[1308년]의 건물임이 8.15해방 전 수리공사 때 밝혀졌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백제의 중 혜현이 수덕사에서 삼론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산 위에는 비구가 거처하는 정혜사가 있으며, 서쪽에 비구니가 사는 총림이 있다. 관음바위, 미륵석불, 수덕사 삼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수덕사 유물[거문고][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2호], 수덕사 칠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81호],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보물 제1263호], 예산 수덕사 만공탑[등록문화재 제473호] 등이 있다.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사적 제229호]은 1968년 사당인 충의사가 처음 창건된 후 1972년에 사적 제229호로 지정받았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나 11세 때에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12세 때 일제의 식민지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자퇴했다.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은 윤의사의 영정을 모신 본전 지역, 윤의사가 태어나 4세 때까지 살았던 생가[광현당] 지역, 그리고 4세~23세 때까지 살았던 성장가[저한당]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윤봉길의사기념관에는 유물 56점이 전시되어 있고, 25세의 짧은 생애를 복합 영상모형으로 연출하여 충의 정신의 학습장이 되고 있다.
김정희 선생 고택[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 사당채가 있다. 안채에는 6칸 대청과 두 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등을 갖춘 ‘ㅁ’자형 가옥이다. 안방과 건넌방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 천장은 다락으로 되어 있었으며,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대청이 있는 그리 흔하지 않은 규모이다. 안채와 사랑채의 구분이 엄격히 구분된 조선시대의 유교적 가옥이지만, 철저한 유교사회에서도 김정희의 실학자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랑채 댓돌 앞에 ‘석년(石年)’이라 각자된 석주가 있다. 이 석주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추사가 직접 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김정희 선생 고택에서 유심히 볼거리 중 하나는 「세한도」이다. 제주로 유배 간 김정희에게 제자인 우선 이상적이 연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 조달해 준 것에 보답하고자 직접 그린 그림으로 꿋꿋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선비의 의지가 담겨 있다.
풍광이 뛰어난 예당관광지는 예산군 응봉면 동촌리, 후사리 일원에 1986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여 2015년 4만 2975㎡ 규모로 조성되었다. 공공시설인 야영장, 잔디광장, 산책로 등 부대시설이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예당저수지에 인접해 있어 풍광이 뛰어나다. 예당저수지 주변의 산책로와 팔각정은 예산군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하였다. 가족 단위 산책객과 친구, 연인과 함께 할 수 있는 명소이다. 하절기에는 인근 주민과 관광객들의 사시사철 낚시 명소로 유명하다.
1964년 완공된 예당저수지[면적 약 9.9㎦, 둘레 40㎞, 너비 2㎞, 길이 8㎞]는 무한천과 신양천 등이 흘러들어와 호수를 이루고 있다. 댐에 설치된 26개의 자동조절 수문을 통해 다시 무한천이 북류하는 데다 상류 집수면적이 넓어 담수어의 먹이가 풍부하여 낚시터로 유명하다. 예산군과 당진군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고 있는 예당저수지는 예산군과 당진군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백제 부흥군의 거점 임존성은 대흥면 봉수산 꼭대기에 있다. 성 주위가 약 2.4㎞에 달하며 석축산성으로 산의 표고는 483m이다. 백제시대에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여 구축된 산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흥산성이라고도 불린다. 임존성의 특징은 네 모서리에 축조를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다른 곳보다 약 2m 정도 더 두텁게 축조된 점이다. 이 때문에 성의 높이도 약간 더 높게 축조되었다. 임존성의 주문은 남문지로 추정되고 있다. 문지 근처는 두터우며 좌우에 성문의 일부로 추정되는 석축구조가 보이고 북문지로 추정되는 곳도 남아 있다. 성내는 평평하게 경사를 이루고 또한 남벽 내에서는 백제시대 토기편과 기와편이 간혹 눈에 띄고 있으며 계단식으로 된 건물지가 보인다. 이 성은 서천의 건지산성과 함께 백제 부흥군의 거점이었다는 사실이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형제의 우애를 다룬 「의좋은 형제 이야기」는 예산의 실존인물인 이성만, 이순 형제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형은 아우를 걱정하고 아우는 형을 걱정하여 밤중에 볏단을 몰래 날라다 쌓아주었다는 내용이다.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인 세종 때까지 충청도 예산에서 호장을 지낸 이성만과 이순 형제가 나눈 형제애가 백성들에게 귀감이 된다 하여 1497년(연산군 3)에 우애비를 건립했고, 이 사실이 단순히 우화로만 전해져 내려오다 1956년~2000년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돼 지난 40여 년간 청소년들의 교육 자료로 활용됐다. 예산군에서는 이를 기리기 위해 2002년 대흥 동헌 앞에 의좋은형제상을 건립하였고, 2004년에는 12억 원을 들여 의좋은형제공원을 조성하였다.
1923년부터 재배된 예산황토사과는 예산의 농산물 대표 브랜드이다. 예산황토사과는 충분한 가을빛과 적당한 일교차, 미네랄이 풍부한 황토 등 사과 재배에 알맞은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재배되는 사과로서, 전국 제일의 맛과 영양을 자부하고 있다. 예산사과는 1923년 예산군 고덕면 대천리에 일본인이 처음으로 사과원을 개원한 이래 일제강점기, 8.15해방, 6.25전쟁, 경제개발 등 우리 민족의 애환을 함께 겪으며 80여 년간 국내 대표적인 사과 브랜드로 도약했다. 1924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조경국에 의해 재배가 시작되었다. 1941년 36명의 과수업자가 경남과물협동조합[예산능금농협의 전신]을 설립하면서 활발하게 사과 생산이 이루어졌다. 주품종은 홍옥, 국광 등으로 1960년대 예산농업고등학교 이종건 교장과 윤용건 원예[과수]담당 선생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보급되었다. 생산량은 전국의 4.1%로 전국 시군 단위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예산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재미가 바로 맛사냥이다. 특히, 전통 한우갈비, 예당붕어찜, 수덕사 산채정식, 삽다리곱창구이, 민물어죽으로 대표되는 예산오미는 그중 으뜸이다. 예산 ‘한우갈비’는 내륙지방의 완만한 구릉에서 자라는 최상품의 한우를 재료로 하여 육질이 부드러우며, 양념육수를 이용하여 일정 시간 숙성시킨 후 숯불에 구워 먹는 소갈비의 감칠맛이 뛰어나다.
예당붕어찜은 잘 말린 무청[시래기]을 냄비 바닥에 깔고 붕어의 맛이 스며들게 하여 담백하고 쫄깃하다. 민물고기를 잘 먹지 못하는 사람도 예당붕어찜은 큰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
수덕사 산채정식은 덕숭산 기슭의 토양과 청정 자연환경에서 생산된 예산의 특산물 삽다리 더덕으로 만든다. 조미료를 넣지 않아 맛이 담백하면서도 깔끔하고, 더덕과 자연산 산채를 비롯한 수십 가지 반찬에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