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지지
-
통일신라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구려 때 용인의 지명은 구성(駒城)이었고, 멸오라는 별칭이 있었다. 신라 경덕왕 때 전국 군현을 정비하면서 그 명칭을 거서로 바꾸고 한주(漢州)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구성은 본래 큰 성 또는 높은 성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데, 거서도 크다는 뜻이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그 개칭 시기에 대해서 757년(경덕왕 16)이...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신봉동과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에 걸쳐 있는 산. 『택리지』에는 "광교산으로부터 북쪽으로 관악산(冠岳山)이 되고 똑바로 서쪽으로 수리산(修理山)이 되어서 서해로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현(縣) 북쪽 20리에 있는데 서봉사(瑞峯寺)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용인군 『지도읍지』에는 "서봉산(瑞峯山)"으로 기록...
-
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고구려의 행정 구역. 17세기 중엽 편찬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본래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가 빼앗아 구성현으로 삼았다고 서술되어 있고, 19세기 중엽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본래 백제의 멸오였는데 후에 구성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가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조령과 죽령 지역까지 점령하게 됨에 따라 한강 유역과...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부아산 북쪽 산록에서 발원하여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금학천은 용인시 내 한복판을 흐르는 경안천의 지천으로 하천 연장은 5.1㎞, 유로 연장은 5.5㎞, 유역 면적은 14.3㎢, 몽리 면적은 5㏊이며, 호안은 6.2㎞의 하천이다. 발원지는 크게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북쪽의 멱조고개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세천이고 다른 하나는...
-
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통신 기관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기 중엽)·『여지도서(輿地圖書)』...
-
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는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양지현(陽智縣)조에 “본래 수주(水州)에 속한 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인데, 본조(本朝:조선)...
-
삼국시대 용인의 지명인 구성현(駒城縣)의 다른 이름 용인의 옛 지명중 하나인 구성현(駒城縣)은 본래 고구려의 지명이었는데, 멸오는 그 이칭이다. 『고려사』·『세종실록』·『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대동지지』·『용인현읍지』(18세기중엽)·『여지도서』(1760)·『용인현읍지』(1842-1843)·『용인현읍지』(1871)·『용인군지도읍지』(1899)·『용인군...
-
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목악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부곡은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는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양지현(陽智縣)조에 “본래 수주(水州)에 속한 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인데,...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과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에 걸쳐 있는 산. 옛날 각종 지지를 보면 보개산과 석성산을 같은 산으로 혼동했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현 동쪽에 있는데 높고 험하며 둘레가 942보이다. 안에 작은 우물이 있는데 가뭄이 들면 말라버린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의 할미성이 있는 산을 지칭한 것이다. 『대동지지』에는 “보개산...
-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정립하던 시대의 용인 지역의 역사. 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쇠퇴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마한 군장사회들 중 하나였던 백제가 백제국가로 흥기하게 됨에 따라 그 중심지로부터 불과 30여㎞ 떨어져 있던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 세력권 안으로 흡수·통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용인 지방은 『대동...
-
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양량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 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부곡은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는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양지현(陽智縣)조에 “본래 수주(水州)에 속한 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인데,...
-
1399년(정종 1)부터 1895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본래는 수주(水州)에 속해 있던 양양촌부곡(陽良村部曲) 또는 양량부곡(陽良部曲)이었다. 1399년(정종 1) 군현제 정비 과정에서 부곡을 현으로 소속시키면서 양지현으로 고쳐 처음 감무(監務)를 설치했다. 1413년(태종 13) 양지현감을 파견했고, 읍치를 광주의 임내(任內)인 추계향(秋溪鄕)으로 옮겼다....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 향린동산 남쪽 350m 고지에서 발원하여 평택시 서탄면 금암리 남쪽에서 진위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진위천의 주요 지천의 하나인 오산천은 기흥구 동백동 향린동산에서 발원하여 일단 신갈천이 된 뒤 소류지인 동백저수지에 유입되었다가 중동과 상하동을 거쳐서 옛 기흥읍 중앙을 가로질러 동류하다가 갈천마을에서 유로를 남쪽으로 변경하여 신갈저수...
-
고려 초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려 건국 초기에는 지방에 수령이 파견되지 못하고 호족들에게 일임되고 있었는데, 성종 때 지방관의 설치를 보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지방에 외관을 파견한 것은 983년 12목의 설치를 시초로 하였다. 그 뒤 몇 차례의 개폐를 거듭하다가 1018년 지방 제도가 일단락되었다. 용구현(龍駒縣)은 고려 건국 초기에 지방 제도를 개...
-
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1403년(태종 3)과 1406년(태종 6)에 고려 말 이래의 문란된 지방 제도를 개편하려 했으나 시행되지 못하다가 1413년(태종 13)에 이르러서야 개편하였다. 이때의 군현제 정비 과정에서 용구현과 처인현을 합치고 내부의 면리를 형성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
-
임진왜란 당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졌으며, 조선군과 일본군의 주둔지로 사용될 만큼 중요한 전략 거점으로 활용되었던 임진산성은 원래 임진산의 정상, 곧 수지구 풍덕천동 산 37번지와 기흥구 보정동 산 82-2번지 일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임진산성지·풍덕천동성지·예진산성지 등으로도 불리는 임진산성은 조선 중기와 후기에 편찬된 각종 지리지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성이기도 한데...
-
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제촌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부곡은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는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양지현(陽智縣) 조에 “본래 수주(水州)에 속한 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인데,...
-
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처인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1018년(현종 9)에 이미 그 이름이 기록에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 이래 특수한 행정 단위의 하나로 기능했을 것이다. 『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
-
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양지현의 치소(治所). 『세종실록(世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여지도서(輿地圖書)』(1760), 『양지현읍지』, 『대동지지(大東地志)』(1862), 『양지군읍지』(1899)에 관련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토성(土姓)으로 안씨, 망성(亡姓)으로 이씨, 지씨가 기...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서원. 이재(李縡)[1680~1746]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천리 노곡(노루실)에 있었던 서원이다.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노론의 중신이자 학자로 활동하던 도암(陶菴) 이재(李縡)[1680~1746]는 만년에 고향인 경기도 용인의 선영 아래로 퇴거하여 한천정사(寒泉精舍)를 짓고 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