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에 있는 산. 금박산은 일명 오봉산(五峯山)이라고도 하는데, 『양지현읍지』에는 ‘주동면 추계리에 있는데, 높이가 4리요, 주위가 25리이다’ 라고 되어 있다. 또한『양지현읍지』에는 ‘고서면 봉림산 아래 주곡리에서 북쪽으로 50리 떨어져 있는 주동면의 금박산 아래로 읍을 옮기고 읍호를 추계(秋溪)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
일제 강점기 용인에서 활동한 친일파 함경남도 장진 출신이다. 구한말 양지현감으로 부임하여 용인과 인연을 맺었다. 본관은 은진(恩津). 호는 제암(濟庵). 아버지는 율학훈도 송문수(宋文洙)이며, 아들은 송종헌(宋鍾憲)이고, 손자는 송재구(宋在九)이다. 송종헌은 송병준 사후 백작의 작위를 이었고 양지면장을 지냈으며, 손자도 양지면장을 지냈다. 함경남도 장진(長津)...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에서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사회 교육 운동. 야학 활동은 일제강점기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사설 야학과 관립 야학이 있었다. 관립 야학은 행정 당국이 일본어 보급을 목적으로 공립 보통학교의 부수 사업으로 운영하였다. 사설 야학은 노동자, 농민, 부녀자 등 소외 계층을 위한 농촌 계몽 운동 성격의 교육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용인에서...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던 여성 잠업 교육 기관. 1910년경 송병준(宋秉晙)[1858~1925]이 자신의 별장에서 농업 기술 및 잠업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수산장(授産場)을 설립·교육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경기도에서 잠업 보급을 위하여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 466번지에 도 직영 강습소를 개설하였다. 이 강습소를 일반인은 잠사강습소라...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었던 양잠업 교육 기관. 누에 기르는 법을 교육하여 농촌 소득 증대를 교육목표로 삼았다. 송병준(宋秉晙)[1858~1925]이 자신의 별장에서 ‘수산장’이라 이름 짓고 잠업 교육을 하다 경기도 지정 잠업 강습소로 변경하여 1915년 양지리에 잠사강습소를 설립하였다. 1930년 잠사강습소가 다른 곳으로 이전함에 따라 편창제...
-
충렬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1929년 간행된 조광조의 문집. 『정암선생문집(靜庵先生文集)』의 정고본(定稿本)은 조선 중기에 이기주(李箕疇)가 수집한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유문(遺文)·사적과 이선(李選)이 수집한 유문, 5대손 조위수(趙渭叟)의 가장초본(家藏草本)을 모아 박세채(朴世采)가 교정·편차하고 부록과 연보를 붙인 것을 말한다. 그후 조...
-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소재 양지초등학교 출신으로 독립운동가. 화성군 매송면 야목리에서 태어나 매송보통학교를 다니다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외가댁인 양지면 양지리에서 양지보통학교 3학년으로 전학하여 양지보통학교에서 졸업하였다. 양지보통학교는 친일파 송병준의 아들 송종헌이 적극 지원하던 학교로, 송종헌이 양지면 추계리 별장에 올 때는 학교 학생들이 일장기를...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때 『명심보감』을 간행한 추적(秋適)이 낙향하여 처음 살기 시작하였으므로 추계리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추계추씨가 많이 살았으므로 추계라 하였다고 한다. 1413년[태종 13] 추계향에 치소가 옮겨져 추계리는 일시적으로나마 양지현의 치소였다. 본래 양지군 주동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공세동 일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