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이씨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처음 성주이씨가 터를 잡아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이씨들이 복을 받으라는 뜻으로 성복(盛福)이라 하였으나 뒤에 성(星)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본래의 이름은 성복골이 아니라 성불골이었는데, 이는 성복리의 꼭대기에 성불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용인군 수진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지...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성씨의 세거지와 집성촌. 성(姓)은 혈연적인 것을 말하고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그러므로 김해김씨하면 김은 성이고 씨는 김해가 된다. 삼국시대의 시조들이 모두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성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통일신라까지도 성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통일신라 이전에 일반적으...
-
이순유를 시조로 하고 이자견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 이순유(李純由)는 동생과 함께 신라 경순왕 때 벼슬하여 재상에 올랐으나 신라가 망하자 지금의 성주인 경산으로 옮겨 살았다. 그 절의에 감복한 태조 왕건이 호장(戶長)으로 삼았다. 12세손인 호장 이장경(李長庚)이 중흥 시조이다. 그의 손자인 평장사 이승경(李承慶)이 원나라에서 벼슬할 때 공이 많...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죽계(竹溪). 자는 흥숙(興叔), 호는 우졸재(愚拙齋)·백암(栢巖). 관찰사(觀察使) 안종도(安宗道)의 증손이며, 좌찬성으로 추증된 안세복(安世復)의 손자이며, 순양군(順陽君) 안몽윤(安夢尹)의 아들이다. 첫째 부인은 판서 이경황(李慶滉)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는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의 사...
-
1873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의 동계 규약과 계원 명단을 적은 계첩(契帖). 용인시 기흥구 중동 동계에서 만든 『완의』는 일종의 상하 합계로, 동계의 규약과 계원 명단을 적은 것이다. 1873년 10월 27일에 성책한 이후로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것은 그동안 동계에서 이 규약을 성실히 지키고 지속해 왔다는 물증이기도 하다. 보통 완의(完議)는 제일 먼저 모 완의라...
-
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이빈의 정려각. 이빈은 성주이씨 문열공파 15대손으로, 효심이 돈독하여 노모의 부양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였다. 노모가 한겨울에 참외가 먹고 싶다는 말을 듣고 설중에 열린 참외를 따다가 봉양하였고,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다 봉양하니 원근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후일에 철종이 이를 듣고 효자로 정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