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애
-
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쉼터와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위한 유용한 공간도 제공한다. 건축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주거건축, 종교건축, 관청건축, 휴양건축, 복지와 교육건축, 상업과 공업건축 등으로 분류될 수...
-
조선 중기 기묘사화의 핵심 인물인 음애 이자와 그의 정치적 인생에 영향을 주었던 조광조가 언제 만났는지 분명치가 않다. 다만 기묘사화가 훨씬 지난 뒤 조광조의 일족이며 함께 친하게 지냈던 조광좌(趙光佐)의 아들인 조항(趙沆)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의 인연을 알 수 있다. 그들이 함께 용인의 음애 선산 부근에 사은정을 세웠던 옛 일과 관련해 보면, 조광조와 음애의 분산(墳山)이 같은...
-
사은정을 보수하여 고친 기록을 보면, 4인의 인연과 마지막 운명을 알 수 있다. ‘서로 의(誼)를 맺고 또 그 근처에 산소가 있는 언덕과 전원을 사이에 두고 지냈으며 한강 남쪽 용인 땅에 자리를 잡아 정자를 지으니 그 정자 이름이 사은정이다. 대체로 밭갈고 땔나무하고 낚시질하고 나물캐고 하는 네 가지 낙에서 취한 것으로 노년의 생활을 즐길 계획이었다. 또한 사현의 서로의...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과 보라동에 걸쳐 있는 산. 산의 북쪽을 지곡천이 휘돌아 흐르고, 남쪽에는 사은정고개가 동서 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북쪽 방향에는 한국민속촌이 조성되어 있으며, 동사면의 중턱에는 사은정(四隱亭)이 있다. 이곳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음애(陰崖) 이자(李耔), 조광조의 사촌 형제였던 방은(方隱) 조광보(趙光輔), 회곡(晦谷) 조광좌(趙廣...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하동마을과 보라동 음지촌을 연결하는 고개. 고개의 이름은 사은현·사은고개·사은정고개·사은정이고개·산쟁이고개 등으로 불리는데, 최신 지도에는 사은정고개로 표기되어 있다. 사은고개 북쪽 두암산의 동사면 중턱에 있는 사은정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북쪽에 두암산이 있으며, 서쪽은 보라택지개발지구로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주변 남쪽에는...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두암산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정암 조광조, 방은 조광보, 회곡 조광좌, 음애 이자 등이 모여 학문을 논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을 사은(四隱)이라 한 것은 정암, 방은, 회곡, 음애가 서로 친하게 지내며 도의(道義)로써 사귀어 더불어 즐거워하고, 농사 짓고[耕], 나무하고[薪], 낚시질하며[釣]...
-
지곡동으로 향하는 삼거리에는 좌우로 큼지막한 주유소가 있다. 좌회전은 지곡동으로 향하는 화살표가 직진은 화성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그 삼거리 오른쪽 주유소 옆에는 작은 글씨로 ‘사은정’이라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50m쯤 올라가보니 아늑한 전통 정자가 나온다. 사은정은 조선 중종조의 학자인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 선생이 종...
-
조선 후기 이용구가 사은정의 중수를 기념하여 지은 기문. 「사은정 중수기(四隱亭 重修記)」는 조국형(趙國衡)과 이인규(李麟珪)가 사은정(四隱亭)을 중수한 뒤에, 작자인 이용구(李容九)에게 중수기를 부탁하자 지어 준 기문(記文)이다. 글씨는 정영소(鄭榮韶)가 썼으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사은정(四隱亭)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사은정은 정암 조광조(趙光祖)를...
-
조선 후기 정범조가 사은정의 중창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사은정기(四隱亭記)」는 조광조의 9세손인 조국인(趙國仁)이 사은정(四隱亭)을 중창하고 나서 정범조(鄭範祖)[1833~1898]에게 부탁하자 지어준 기문(記文)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사은정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사은정은 정암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하여 중종 때의 유학자로 식견이 높았던 조광보(...
-
지곡리는 한산이씨 집성촌으로, 음애(陰崖) 이자(李耔)[1480~1533] 선생이 생전에 기거했다는 고택과 그의 무덤이 경기도 민속자료 10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아산이 마주 보이는 나지막한 야산에 자리를 잡은 이자 선생의 집은 동향으로 현재 터만 남아 있고, 후손들은 기거하고 있지 않아 관리 상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안방, 건넌방, 사랑방에...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는 종교의 범주에 넣어 이야기...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자의 묘. 이자(李耔)[1480~1533]의 본관은 한산, 호는 음애(陰崖), 시호는 문의(文懿)이며 목은 이색의 후예이다. 이자가 남긴 『음애일록』은 1509년(중종 4) 윤9월부터 시작하여 1516년(중종 11) 12월까지의 기록으로, 당시의 정치상황은 물론이고, 왜구와 교섭한 일, 농사에 관한 옛 풍속...
-
경기도 용인시의 한산이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이자(李耔)[1480~1533]의 일기. 『음애일기(陰崖日記)』는 『음애일록(陰崖日錄)』, 또는 『음애잡기(陰崖雜記)』라고도 하는데,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음애 이자(李耔)[1480~1533]가 1509년(중종 4) 9월부터 1516년 12월까지 조정에서 일어난 일 등을 기록하고 있는 일기문이다. 1권...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501년(연산군 7)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때 함께 급제한 김안국(金安國)·성세창(成世昌) 등과 교유했다. 150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감찰(監察)·이조좌랑 등...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상동마을에 있는 이헌규의 공적을 기리는 비. 이헌규(李憲珪)는 고려 말 삼은 중의 한 사람인 이색의 후손이며,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음애 이자(李耔)의 후손으로 이 마을에서 대를 이어 살아왔다. 이헌규는 가세가 몹시 곤궁하였으나 자수성가한 후 낙후한 고향의 발전을 위하여 마을회관과 정자를 건립하고 장학회를 만들어 육영 사업에 공헌하...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속하는 법정동. 이 마을에 지초(芝草)가 많이 자생하였고 또한, 골이 깊었으므로 지곡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 부아산 뒤쪽의 골짜기가 되므로 뒤실-디실-지실이 지곡으로 되었다고 전한다. 하동(지곡1리)은 두암산 기슭 사은정(四隱亭)이 있어 산쟁이라고도 하지만 예로부터 남출 북류하는 지곡천의 아래에 있어 하동이라 했다. 상동에는 기와집말,...
-
기와집말은 기흥구 지곡동 상동에 위치한 자연부락으로 이 마을에는 기묘명현 중의 한 분이신 음애 이자 선생의 사당을 모신 가묘(家廟)와 종택(宗宅)이던 구옥(舊屋)의 기와집이 생겨서 기와집말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1997년 용인시 향토유적 보존가옥으로 지정되었다가 그 후에 경기도 민속자료로 지정이 되었다. 중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을 월애동(月厓洞)이라고도 한다....
-
이윤경을 시조로 하고 이자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한산이씨(韓山李氏)의 시조는 고려 숙종 때 호족으로서 권지호장직(權知戶長職)에 오른 이윤경(李允卿)이다. 중시조는 목은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이다. 이곡은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으로 당대의 대문장으로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경학의 대가였다. 이곡의 문하에서 권근·변계량 등의 학...
-
음애 이자 선생의 무덤은 2000년 6월 12일 경기도 기념물 제172호로 지정되었다. 음애 이자 선생(1480~1533, 성종 11~중종 28)의 본관은 한산, 문신, 호는 음애이며 1501년 사마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감찰을 지내고 천추사의 서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곧 이조좌랑에 올랐으나 연산군의 난정으로 사직했다. 그 후 1518년...
-
회곡 조광좌(趙光佐)는 조선 중기(1483~1521)의 문신으로 사은정의 주인공 정암, 음애, 방은과 같이 친우를 맺었다. 1507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으로 박경(朴耕)·김공저(金公著)의 옥사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 1518년 형조좌랑, 1519년 지평(持平)이 되어 “중종반정 시 공신으로 책봉된 자 중에 공이 없이 책봉되어 녹을 받고 있는 자가 매우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