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
이알평을 시조로 한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는 초기 신라의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으로 전해지는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다. 표암공이라는 호칭은 알평이 애초에 경주 박바위에 강림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이씨 중에는 표암공에 연원을 두고 있는 본관이 많아 합천·원주·아산·재령이씨 등이 이에 속하며, 이 밖에도 우계이씨의 일부도 알...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광조의 묘와 신도비.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으로,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를 통해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고,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단행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
조선 후기 용인의 열녀. 본관은 연안. 아버지는 이형원, 남편은 박래영이다. 1785년(정조 9)에 출생하여 16세 때에 박래영과 결혼하였다. 그때 시어머니는 이미 작고하였고, 홀시아버지는 병환으로 문밖출입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7년 동안 극진히 간병하였으나 마침내 세상을 떠났고, 병약하던 남편마저 24세 되던 해인 1809년(순조 9)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멸성지정으로 애통하더...
-
전통시대에 사족(士族)과 백성이 설립한 경기도 용인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서당은 민간 사설 교육기관으로 오늘날의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던 기관이다. 기원은 고구려의 경당(扃堂)에 있으며,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기관이다. 서당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가 증대된 것은 16세기 사림의 등장과 시기를 같이하는 것으로, 중종(中宗)대 사림파의...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처음 성주이씨가 터를 잡아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이씨들이 복을 받으라는 뜻으로 성복(盛福)이라 하였으나 뒤에 성(星)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본래의 이름은 성복골이 아니라 성불골이었는데, 이는 성복리의 꼭대기에 성불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용인군 수진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지...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성씨의 세거지와 집성촌. 성(姓)은 혈연적인 것을 말하고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그러므로 김해김씨하면 김은 성이고 씨는 김해가 된다. 삼국시대의 시조들이 모두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성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통일신라까지도 성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통일신라 이전에 일반적으...
-
1399년(정종 1)부터 1895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본래는 수주(水州)에 속해 있던 양양촌부곡(陽良村部曲) 또는 양량부곡(陽良部曲)이었다. 1399년(정종 1) 군현제 정비 과정에서 부곡을 현으로 소속시키면서 양지현으로 고쳐 처음 감무(監務)를 설치했다. 1413년(태종 13) 양지현감을 파견했고, 읍치를 광주의 임내(任內)인 추계향(秋溪鄕)으로 옮겼다....
-
경기도 용인 지역에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성씨. 성(姓)은 혈족(血族)을 나타내기 위하여 붙이는 일종의 칭호로서, 아버지와 자식 간에 대대로 계승되며 절대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고려 중기부터라고 하는데, 시대에 따라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성에는 본관(本貫)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관(...
-
경기도 용인시의 의령남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 의령남씨가 고문서는 조선 초기에 남은(南誾)[1354~1398]이 남긴 유서(분재기)와 남재(南在)의 왕지, 조선 중기에 남타(南柁)·남일성(南一星)·남식(南烒)·남이성(南二星)에게 내린 교지 5점 및 남처관(南處寬)의 교첩, 조선 후기의 남구만(南九萬)·남학명(南鶴鳴)의 준호구 등을 말한다....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평은(平隱). 구성부원군 이중인(李仲仁)의 맏아들이다. 이사영(李士穎)[?~1406]은 일찍 문과에 급제하여 청주목사(淸州牧使), 안동부사(安東府使), 형조전서(刑曹典書)를 거쳐 1391년(공양왕 3) 밀직사우대언(密直使右代言)에 임명되었으나, 정몽주(鄭夢周)가 격살된 후 당여(黨與)로 몰려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등...
-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열부. 본관은 용인(龍仁). 이인수(李仁壽)의 딸로 죽창(竹窓) 이시직(李時稷)과 혼인하였다. 이시직의 처 이씨는 선조 대의 열부로 천품이 지효하여 시부모 봉양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고, 자녀의 교육은 법도에 어긋남이 없이 엄격하게 하였다. 병자호란 때 그의 남편 이시직(李時稷)이 강화도에서 송시영(宋時榮)과 함께 자결을 하여 종복이 망건과 유서를...
-
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장수 노인. 1435년(세종 17)에 세종은 각 도의 감사에게 나이가 100세에 이른 노인들에게 쌀 10석과 술, 고기를 주라고 교지를 내렸다. 이로부터 13년이 지난 1448년(세종 30)에는 왕이 법에 따라 100세 이른 노인들을 위문하고 구제하는지 확인하여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정부개(鄭夫介)는 용인 지역에 살았던 최장수 노인이었다. 당시 정...
-
조선 후기 용인의 열녀. 용인 사람 정인빈(鄭寅賓)의 아내로 남편이 병이 들자 정성을 다해 간호했으며, 남편이 죽자 8일간 식음을 전폐하여 결국 세상을 떠났다. 1753년(영조 29) 조정에서 이 일을 높이 사 이씨를 열녀로 표정하였다. 1753년(영조 29) 열녀로 표정(表旌)하였다....
-
이지란을 시조로 하고 이문주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청해이씨의 시조는 조선 개국공신 이지란(李之蘭)이다. 그의 본명은 퉁두란으로서 아버지에 이어 천호가 되었다가 원나라 말기 고려 공민왕 때 많은 부하를 이끌고 귀화하여 북청에 거주하면서 이성계 휘하에 들어가 이씨 성을 하사받았다. 이어 조선 개국공신 1등에 올라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졌다....
-
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양지현의 치소(治所). 『세종실록(世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여지도서(輿地圖書)』(1760), 『양지현읍지』, 『대동지지(大東地志)』(1862), 『양지군읍지』(1899)에 관련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토성(土姓)으로 안씨, 망성(亡姓)으로 이씨, 지씨가 기...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명당 이야기. 용인 지역은 예부터 명당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여, 여러 지역에서 명당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한다. 「포곡면 신원리의 명당자리」도 그 중의 하나이다. 신원리에는 용인이씨가 많이 살고 있는데, 「포곡면 신원리의 명당자리」는 이씨 문중과 관련되어 있다. 1980년 5월 3일에 포곡면 신원리에 사는...
-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경기도 용인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는 풍수사상·풍수지리·풍수설·풍수도참설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풍수사상은 이를 논리 정연한 학문적 체계로 이해하는 태도이고, 풍수지리는 땅에 대한 이치를 분석·평가하는 과학으로 보는 견해이다. 풍수설은 문화적 현상 내지 민간의 풍속으로 보는 견해이고, 풍수도참설은 앞으로 다가올 길흉을 점치는 비과학적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