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 비는 내용에 따라 불교유적과 관련된 탑비(塔碑)와 유교유적과 관련된 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탑비는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이고, 묘비와 신도비는 공업(功業)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
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경기도 용인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조선 후기 유학자로 『문산집』을 남기었고 특히 노론의 유학자로 남인인 다산 정약용과 시문으로 토론을 벌인 용인의 유학자. 이재의(李載毅)[1773~1839]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여홍(汝弘), 호는 문산(文山)이다. 덕천군의 14대 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정조 때 병조판서를 역임한 이주국(李柱國)이며, 아버지는...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이주국(李柱國) 장군의 고손이다.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이재의(李載毅)이다. 1809년(순조 9)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승지 및 포도대장을 역임하였다. 묘소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