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
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쉼터와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위한 유용한 공간도 제공한다. 건축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주거건축, 종교건축, 관청건축, 휴양건축, 복지와 교육건축, 상업과 공업건축 등으로 분류될 수...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는 희성(希聖)·응성(應聖), 호(號)는 휴암(休巖). 창원공씨의 시조인 공소(孔紹)의 5대손이자, 공숙(孔俶)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공의달(孔義達)이다. 어머니는 죽산 박원인(朴元仁)의 딸이며, 처는 파평 윤영세(尹永世)의 딸이다. 공서린은 1507년(중종 2) 진사시를 거쳐 같은 해에 급제하였다. 낭관과 사간원 정언으로 있으...
-
조선 후기 성근묵이 조광조의 묘소를 지나며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성근묵(成近黙)[1784~1852]이 정암 조광조 선생의 묘소를 지나며 감회를 기록한 칠언절구의 한시 작품으로, 성근묵의 문집인 『과재집(果齋集)』에 실려 있다. 2002년 『수지읍지』에서 「과정암선생묘(過靜庵先生墓)」로 번역 소개되었다. 용인 지역에는 조광조의 묘소와 심곡서원 등, 조광조와 관...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용인 지역에서 교육은 오래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실시가 되었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은 조선시대 이후이다. 조선시대에는 공적 교육기관인 향교나 재지 사족들이 선현의 제향을 위해 세운 서원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용인 지역에는 포은 정몽주 등 많은 선현의 유택이 있다. 따라서 그 학덕을 따르기 위해 이주...
-
1638년(인조 16) 김육이 기묘사화와 관련된 인물들의 전기를 모아 간행한 책. 『기묘록(己卯録)』은 본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화를 당한 김정국(金正國)의 『기묘당적(己卯黨籍)』과 기묘팔현(己卯八賢)의 한 사람인 안당(安瑭)의 손자 안로(安璐)가 저술한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기묘당적』은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인물 94인의 생년·급제·...
-
조선 중기 기묘사화의 핵심 인물인 음애 이자와 그의 정치적 인생에 영향을 주었던 조광조가 언제 만났는지 분명치가 않다. 다만 기묘사화가 훨씬 지난 뒤 조광조의 일족이며 함께 친하게 지냈던 조광좌(趙光佐)의 아들인 조항(趙沆)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의 인연을 알 수 있다. 그들이 함께 용인의 음애 선산 부근에 사은정을 세웠던 옛 일과 관련해 보면, 조광조와 음애의 분산(墳山)이 같은...
-
사은정을 보수하여 고친 기록을 보면, 4인의 인연과 마지막 운명을 알 수 있다. ‘서로 의(誼)를 맺고 또 그 근처에 산소가 있는 언덕과 전원을 사이에 두고 지냈으며 한강 남쪽 용인 땅에 자리를 잡아 정자를 지으니 그 정자 이름이 사은정이다. 대체로 밭갈고 땔나무하고 낚시질하고 나물캐고 하는 네 가지 낙에서 취한 것으로 노년의 생활을 즐길 계획이었다. 또한 사현의 서로의...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이다. 할아버지는 한성소윤(漢城少尹) 김근(金近), 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이며, 어머니는 진천(鎭川) 송씨 송학(宋翯)의 딸이며, 부인은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다음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수찬, 사헌부지평에 올랐다....
-
조선 후기 숙종이 조광조의 문집인 『정암집』을 읽고 지은 어제시(御製詩). 「독정암집유감(讀靜庵集有感)」은 1990년 『용인군지』에서「정암집을 읽고 느낌을 적다」로 번역 소개되었다. 조선의 제19대 왕인 숙종(肅宗)[1661~1720]이 『정암집(靜庵集)』을 읽고 난 뒤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도덕과 절의를 칭송하여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작품이다. 민...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과 보라동에 걸쳐 있는 산. 산의 북쪽을 지곡천이 휘돌아 흐르고, 남쪽에는 사은정고개가 동서 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북쪽 방향에는 한국민속촌이 조성되어 있으며, 동사면의 중턱에는 사은정(四隱亭)이 있다. 이곳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음애(陰崖) 이자(李耔), 조광조의 사촌 형제였던 방은(方隱) 조광보(趙光輔), 회곡(晦谷) 조광좌(趙廣...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광조의 묘와 신도비.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으로,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를 통해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고,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단행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
생몰년을 알 수 없는 조광보는 조선 중기의 지사(志士)이며, 일명 광보(廣輔). 호는 방은(方隱)이다. 연산군 때 임사홍(任士洪)이 권력을 장악하여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무인인 박영(朴英)에게 그를 죽이라고 권한 바 있으나 실행되지 못하였다. 1507년(중종 2)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박경(朴耕)의 옥사에 관련, 국청에서 죄인심문을 받을 때, 무오사화 때 연루된 어...
-
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 비는 내용에 따라 불교유적과 관련된 탑비(塔碑)와 유교유적과 관련된 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탑비는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이고, 묘비와 신도비는 공업(功業)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하동마을과 보라동 음지촌을 연결하는 고개. 고개의 이름은 사은현·사은고개·사은정고개·사은정이고개·산쟁이고개 등으로 불리는데, 최신 지도에는 사은정고개로 표기되어 있다. 사은고개 북쪽 두암산의 동사면 중턱에 있는 사은정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북쪽에 두암산이 있으며, 서쪽은 보라택지개발지구로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주변 남쪽에는...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두암산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정암 조광조, 방은 조광보, 회곡 조광좌, 음애 이자 등이 모여 학문을 논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을 사은(四隱)이라 한 것은 정암, 방은, 회곡, 음애가 서로 친하게 지내며 도의(道義)로써 사귀어 더불어 즐거워하고, 농사 짓고[耕], 나무하고[薪], 낚시질하며[釣]...
-
지곡동으로 향하는 삼거리에는 좌우로 큼지막한 주유소가 있다. 좌회전은 지곡동으로 향하는 화살표가 직진은 화성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그 삼거리 오른쪽 주유소 옆에는 작은 글씨로 ‘사은정’이라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50m쯤 올라가보니 아늑한 전통 정자가 나온다. 사은정은 조선 중종조의 학자인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 선생이 종...
-
조선 후기 이용구가 사은정의 중수를 기념하여 지은 기문. 「사은정 중수기(四隱亭 重修記)」는 조국형(趙國衡)과 이인규(李麟珪)가 사은정(四隱亭)을 중수한 뒤에, 작자인 이용구(李容九)에게 중수기를 부탁하자 지어 준 기문(記文)이다. 글씨는 정영소(鄭榮韶)가 썼으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사은정(四隱亭)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사은정은 정암 조광조(趙光祖)를...
-
조선 후기 정범조가 사은정의 중창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사은정기(四隱亭記)」는 조광조의 9세손인 조국인(趙國仁)이 사은정(四隱亭)을 중창하고 나서 정범조(鄭範祖)[1833~1898]에게 부탁하자 지어준 기문(記文)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사은정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사은정은 정암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하여 중종 때의 유학자로 식견이 높았던 조광보(...
-
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하여 설립된 경기도 용인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우리나라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후기의 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다. 조선의 서원은 성립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서 큰 차이를...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서로 도와가며 더불어 함께하는 어린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어린이, 새롭게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행동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인근에 정암 조광조를 기리기 위한 심곡서원이 있어 서원초등학교라 이름하고 2001년 3월 2일 12학급으로 개교하였다. 2002년 2월 제1회 졸...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성씨의 세거지와 집성촌. 성(姓)은 혈연적인 것을 말하고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그러므로 김해김씨하면 김은 성이고 씨는 김해가 된다. 삼국시대의 시조들이 모두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성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통일신라까지도 성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통일신라 이전에 일반적으...
-
조선 후기 충렬서원의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은진.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또는 우재(尤齋). 증조부는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 조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선산곽씨로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25년(인조 3) 도사 이덕사(李德泗)의 딸 한산이씨와 혼인하...
-
1673년(현종 16) 송시열이 심곡서원 강당 건축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심곡서원 강당기(深谷書院 講堂記)」는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5세손인 조위수(趙渭叟)가 심곡서원의 강당을 건축하고 난 뒤 송시열(宋時烈)[1607~1689]에게 글을 청하자 지어 준 기문(記文)이다.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
1935년 민병승이 심곡서원 강당 중건의 전말을 지은 기문. 「심곡서원 중건기(深谷書院 重建記)」는 심곡서원 건축물이 오랜 세월의 흐름에 퇴락해지자 새로 중건하고 낙성하면서, 용인의 유림들이 민병승(閔丙承)[1866~?]에게 글을 청하자 지어 준 기문(記文)이다.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으로, 정암...
-
조선 중기에 김상헌이 심곡서원 중건에 즈음하여 지은 상량문. 「심곡서원 중건상량문(深谷書院 重建上樑文)」은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심곡서원 중건 상량식(上樑式)에 즈음하여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후손들이 글을 청하자 지어 준 상량문(上樑文)이다.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
조선 후기 이재가 지은 심곡서원의 규칙서. 「도암 이재 학규」로도 불리는 「심곡서원 학규」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재(李縡)[1680~1746]가 지은 심곡서원의 규칙서이다. 현재 상현동에 있는 심곡서원 강당에 현액되어 있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 중기인 1650년(효종 1) 사액(賜額)된 서원으로,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
-
조선시대 이래 경기도 용인의 심곡서원에서 행해지는 향례. 심곡서원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와 양팽손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1605년(선조 38) 무렵 심곡서원이 건립되었으며, 설립과 동시에 심곡(深谷)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서원 철폐 당시에도 존속한 전국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심곡서원의 향사(享祀)는 춘향(春享)과 추향(秋享)을 지내고,...
-
조선 후기 이재가 조광조가 용인에 심은 은행나무를 소재로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 「심곡서원에 걸린 시판의 운에 따라」는 정암 조광조 선생이 심었다는 은행나무에 작자의 감정을 이입하여 추모의 정을 술회한 작품이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으로,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를 봉안한 곳이다. 경기도 용인시에는 정암 조광조와 관...
-
조선 후기 성영우가 심곡서원을 배알하고 난 뒤의 감회를 적은 오언율시의 한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심곡서원(深谷書院)은 기묘명현인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학덕을 기리는 서원으로, 조선 명종 때 사액되었다. 따라서 용인 지역의 유림은 물론이고 전국의 유학자들이 찾아와 배알하며 감회를 시문으로 남겼다. 「심곡서원에 배알하며」도 그중의 한...
-
1640년(인조 18) 윤선거가 심곡서원을 참배하고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심곡서원을 참배하며」는 윤선거(尹宣擧)[1610~1669]가 심곡서원이 사액(賜額)되던 1640년 7월에 직접 사원을 배알하며 감회를 적은 오언율시의 한시 작품이다. 심곡서원이 파주에 있는 자운서원과 함께 사액된 것을 경하하며, 정암 조광조 선생의 학덕과 유향(遺響)을 기리고 있다....
-
조선 후기 오원이 정암사를 참배하고 나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오원(呉瑗)[1700~1740]의 문집인 『월곡집(月谷集)』권2에 전하는 작품으로, 정암사는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정암 조광조를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많은 선비들이 정암사를 참배하고 그 회포를 시로 남겼다. 봄날에 사당 앞의 잡초를 보고 서글픈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청산회백기비풍...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용인시의 역사. 용인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이래의 변화를 거쳐 1413년(태종 13)에 등장했다. 오늘날 용인시의 영역이 형성된 것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용인군과 양지군, 죽산군의 일부가 통합됨으로써 그 모태가 마련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은 지역 내외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 오는 가운데 형성된...
-
조선 후기 김간이 조광조에 대한 추모의 정을 그린 오언절구의 한시. 김간(金幹)[1646~1732]의 문집인 『후재집(厚齋集)』권1에 전한다. 작품의 제목 「연(蓮)」 밑에 “연지는 조선생이 직접 팠다(蓮池卽趙先生親鑿)”라고 부기하였다. 연(蓮)의 일반적인 속성을 서술하고,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성품과 비의해서 형상화하여 추모의 정을 표현하고 있다. 진흙에서 나...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광조를 모신 서원.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사림파의 대표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1519년 기묘사화 때 죽음을 당하였다. 심곡서원은 1650년(효종 원년)에 ‘심곡(深谷)’이라는 사액현판과 토지와 노비 등을 임금에게 하사받았다. 흥선대원군이 서원...
-
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회화가 문사들의 예술 장르로서 애호되었다. 시·서에 뛰어난 문사들은 자신들의 뜻과 흥취를 표현하거나 탈속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것을 기본적인 교양이자 고상한 풍류로 여겼다. 이와 같이 시·서와 더불어 문인 문화의 핵심을 이루었던 조선시대 회화는 특히 문사들에 의해 창작이념과 취향이 계도되면서 중세적 감상물로서의 성격을 형성하는 특징을...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조선 전기에 세워진 향교. 용인향교는 1400년(정종 2)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나 용인이란 지명이 1413년(태종 13)에 생겼으므로 그 이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1986년 5월 31일 용인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9월 10일에 문화재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용인향...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는 종교의 범주에 넣어 이야기...
-
경기도 용인시에 분포되어 있는 유교 관련 유적과 유물. 유교유물유적은 크게 유적 자료와 유물 자료로 나눌 수 있다. 용인 지역에서 전해 오는 유적 자료로는 서원, 향교, 사우, 누정, 정려, 비석 등의 건축물 등을 들 수 있다. 또 유물 자료로는 서원·향교 등에서 제사 의식 때 사용하는 신주(神主)와 제기, 유교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문집과 가문의 역사를 담은 기록인 족보...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 중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 2007년 10월 현재 경기도 용인시에는 국가지정 유형문화재로 국보 9점, 보물 37점과 경기도에서 지정한 경기도유형문화재 12점이 있다. 용인시청에서는 국가지정 문화재 중 보물 9점과 경기도유형문화재 8점을 집중 관리·소개하고 있다. 광교산 동쪽 서봉사(瑞峰寺) 터에 있는...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자의 묘. 이자(李耔)[1480~1533]의 본관은 한산, 호는 음애(陰崖), 시호는 문의(文懿)이며 목은 이색의 후예이다. 이자가 남긴 『음애일록』은 1509년(중종 4) 윤9월부터 시작하여 1516년(중종 11) 12월까지의 기록으로, 당시의 정치상황은 물론이고, 왜구와 교섭한 일, 농사에 관한 옛 풍속...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중구(仲久), 호는 정존재(靜存齋). 아버지는 도승지로 추증된 이종유(李宗蕤)이며, 어머니는 영월엄씨(寧越嚴氏)이다. 부인은 경세인(慶世仁)의 딸이다. 12세 때 부친을 여읜 후 학문에 힘써, 동리 가까이 살던 학덕이 높은 유우(柳藕)의 문하가 되었다. 결혼 후에는 장인 경세인에게 사사하며 식견을 넓혀 나갔다. 이후 천문, 산술, 의약...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차옹(次翁), 호는 졸옹(拙翁). 할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이중손(李仲孫)이고, 아버지는 판관(判官)을 지낸 이희안(李希顔)이다. 이성동(李成童)은 조선 중기 연산군 대에 활약한 문신으로 기묘명현의 산사람이다. 1495년(연산군 1) 생원으로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지평(持平)·사간(司諫)·직제학(直提學)·대사간(大司諫) 등을...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501년(연산군 7)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때 함께 급제한 김안국(金安國)·성세창(成世昌) 등과 교유했다. 150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감찰(監察)·이조좌랑 등...
-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이재는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영조의 탕평정치(蕩平政治)에 맞선다는 이유로 자주 파직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고 만년에는 용인의 한천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는 등 정계와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도암·한천(寒泉). 진사 이만창(李晩昌)의 아들이며,...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안(子安), 호는 눌재(訥齋)·목수(木叟). 영의정 이직(李稷)의 현손이며, 증조부는 이계령(李繼寧)이고, 할아버지는 이숙생(李叔生)이다. 아버지는 정자(正字) 이윤탁(李允濯)이며, 어머니는 신회(申澮)의 딸이다. 부인은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이효언(李孝彦)의 딸이다. 아들은 이염(李爓)이다. 이충건은 1510년(중종 5...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대립(大立), 호는 쌍괴(雙槐). 증조할아버지는 이승충(李升忠)이고, 할아버지는 이봉손(李奉孫)이며, 아버지는 사간 이효독(李孝篤), 어머니는 최명근(崔命根)의 딸이다. 부인은 이규(李逵)의 딸이다. 이홍간(李弘幹)은 1507년(중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권지승...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서 심곡서원 입구에 있는 하마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의 심곡서원 입구에 있는 하마비(下馬碑)는, 정암 선생이 손님마마를 앓던 5대 독자를 희생시켜 준 은혜를 기리기 위해 그 부모가 세웠다고 전한다. 1977년 10월에 수지구 상현동에 사는 이가운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85년에 출간한 『내 고...
-
『조선왕조실록』에서 정암 조광조는 800여회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불과 4년 정도의 벼슬길에 있었던 정암이 조선조 역사를 통하여 그렇게 자주 언급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정암의 사상적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이 컸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암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한국 유학사상에서 도학을 확립시킨 지대한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1510년(...
-
조선 후기 이재가 조광조를 모신 정암사를 배알하고 나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정암사(靜庵祠)」는 이재(李縡)[1680~1746]의 문집인 『도암집(陶庵集)』에 수록되어 있는데, 1987년 『용구문화』의 「옛 문헌 속의 용인」에서 「정암사당에서」로 번역 소개되었다. 정암사 주변의 경관을 산수화를 그리듯 묘사하고, 정암 조광조 선생에 대한 추모의 정을 술회하고...
-
충렬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1929년 간행된 조광조의 문집. 『정암선생문집(靜庵先生文集)』의 정고본(定稿本)은 조선 중기에 이기주(李箕疇)가 수집한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유문(遺文)·사적과 이선(李選)이 수집한 유문, 5대손 조위수(趙渭叟)의 가장초본(家藏草本)을 모아 박세채(朴世采)가 교정·편차하고 부록과 연보를 붙인 것을 말한다. 그후 조...
-
1673년(현종 14) 김간이 심곡서원에 있는 괴목을 소재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김간(金幹)[1646~1732]이 계축년(1673)에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심곡서원에서 독서하며, 서원 왼쪽에 있는 괴목을 소재로 지은 작품으로, 원 제목은 「정암조선생수종괴수(靜庵趙先生手種槐樹)」이다. 담장 근처에 있는 괴목은 정암 조광조 선생이 손수 심은 나무로, 현재 용인시...
-
조선 중기의 지사. 자는 중익(仲翼), 호는 방은(方隱). 일명은 조광보(趙廣輔)이다. 조광보(趙光輔)는 식견이 고명(高明)하고 직언을 잘하였다. 연산군 때 임사홍(任士洪)의 집권으로 조정이 혼란하자 그를 죽이라고 무인(武人) 박영(朴英)에게 권하였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1507년(중종 2) 참의(參議) 유숭조(柳崇祖), 호군(護軍) 심정(沈貞), 전(前) 승지(承旨)...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증조할아버지는 조육(趙育)이고, 할아버지는 사예(司藝) 조충손(趙衷孫)이며, 아버지는 감찰(監察) 조원강(趙元綱)이다. 부인은 첨사(僉使) 이윤동(李允洞)의 딸이다. 아들은 조용(趙容)이다.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한성부 중부 행교동(현재 종로구 경운동)에 거주하였다....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일명 조광좌(趙廣佐). 자는 계량(季良), 호는 회곡(晦谷). 증조부는 도총제(都摠制) 조모(趙慕)이고, 할아버지는 조종효(趙宗孝)이다. 아버지는 군수(郡守) 조훈(趙勛)이다. 형은 조광보(趙廣輔)이고 아우는 조광임(趙廣臨)이다. 조광좌는 1507년(중종 2)에 성균관 유생으로서 박경(朴耕)·김공저(金公著)의 옥사에 연루되어 투옥...
-
조선 중기의 문신. 조변(趙汴)[1500~1582]은 조선 중기 연산군 대부터 선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이다. 본래 학식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으나 천성이 매우 명석하였다. 소년시절부터 안처겸(安處謙)과 서로 사이좋게 지내다가 뒤에 그와 동서 사이가 되었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호연(浩然), 호는 금재(琴齋). 학자이며 대사헌을 지낸 조광조(趙光祖)가 족숙(族叔)이다...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과 처인현을 병합해 만들어진 용인현은 수원진영(水原鎭營)에 소속되었으며 남양부(南陽府)에서 관할하였다. 수원진에 부속된 시기에는 16개 면을 종5품의 현령이 다스렸으며, 훈도(訓導) 1명을 두었다. 1872년(고종 9)에 작성된 『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걸로 보아 이와 같은...
-
기와집말은 기흥구 지곡동 상동에 위치한 자연부락으로 이 마을에는 기묘명현 중의 한 분이신 음애 이자 선생의 사당을 모신 가묘(家廟)와 종택(宗宅)이던 구옥(舊屋)의 기와집이 생겨서 기와집말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1997년 용인시 향토유적 보존가옥으로 지정되었다가 그 후에 경기도 민속자료로 지정이 되었다. 중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을 월애동(月厓洞)이라고도 한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원. 충렬서원은 고려 후기의 충신이자 동방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중기인 1576년(선조 9)에 지은 서원 건물이다. 그후 마을 이름도 충신을 사모한다고 해서 ‘모현면[현 모현읍]’으로, 정몽주의 묘소와 서원이 있다고 해서...
-
충렬서원은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시는 서원이다.충렬서원 전경 포은 선생은 동방 성리학의 조종(祖宗)으로 추앙되어 서원을 세우기 위한 논의가 일찍부터 있었으나 1576년(선조 9) 현재의 죽전에 정암 조광조 선생과 함께 모시는 서원을 창건하게 되었다. 충렬서원과 관련된 기록 등을 참고하면 죽전서원이라고 불렀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불타버린 후 1605년(...
-
이윤경을 시조로 하고 이자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한산이씨(韓山李氏)의 시조는 고려 숙종 때 호족으로서 권지호장직(權知戶長職)에 오른 이윤경(李允卿)이다. 중시조는 목은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이다. 이곡은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으로 당대의 대문장으로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경학의 대가였다. 이곡의 문하에서 권근·변계량 등의 학...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육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한양조씨의 시조는 고려 때 첨의중서사를 지낸 조지수이다. 한양조씨 가문에서는 조선 개국공신이 2명이 배출되었는데, 태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조인옥(趙仁沃)과 태종 때 찬성사를 지낸 조온(趙溫)이다. 한양조씨 가운데서 가장 번창하였던 가문은 판도판서 조인벽(趙仁璧)의 아들 4형제의 후손이다....
-
1871년(고종 8) 한규복이 조광조가 심은 은행나무를 소재로 지은 한시. 「행수가(杏樹歌)」는 심곡서원 강당 시판(詩板)에 역시 한규복이 지은 「행수시(杏樹詩)」와 함께 새겨진 작품이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가 심었다는 은행나무를 소재로 향사(享祀)를 받드는 중정일(中丁日)에 지었다. 칠언을 기본 자수율로 지은 37행으로 구성된 한시 작품이다...
-
1871년(고종 8) 한규복이 조광조가 심은 은행나무를 소재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행수시(杏樹詩)」는 한규복이 지은 「행수가(杏樹歌)」와 함께 심곡서원 강당 시판(詩板)에 새겨진 작품이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가 심었다는 은행나무를 소재로 향사(享祀)를 받드는 중정일(中丁日)에 지었다. 수지구 심곡동에는 정암 조광조의 유적으로...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태휘(太輝), 호는 초당(草堂). 아버지는 군자감부봉사(軍資監副奉事) 허한(許瀚)이며, 부인은 강릉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아들은 허성(許筬)·허봉(許篈)·허균(許筠)이고, 딸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이다. 허엽(許曄)[1517~1580]은 1546년(명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
-
조선 후기 기호 지역에서 일어난 심성(心性)에 관한 학설 논쟁. 호락논쟁(湖洛論爭)은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이라고도 한다. 이는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한원진(韓元震) 등을 지지한 이들이 충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살았으므로 호론(湖論)이라 하며,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한 이간(李柬)·이재(李縡)를 지지한 이들은 서울·경기 낙하(洛下) 지역에 주로 살았으므로...
-
회곡 조광좌(趙光佐)는 조선 중기(1483~1521)의 문신으로 사은정의 주인공 정암, 음애, 방은과 같이 친우를 맺었다. 1507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으로 박경(朴耕)·김공저(金公著)의 옥사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 1518년 형조좌랑, 1519년 지평(持平)이 되어 “중종반정 시 공신으로 책봉된 자 중에 공이 없이 책봉되어 녹을 받고 있는 자가 매우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