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
-
1957년 용인교육구에서 간행한 용인 지역 최초의 사진첩. 1950년대 당시 용인군의 군청, 면사무소, 학교 등 여러 공공기관과 기관 임원 등의 사진을 수록한 사진첩이다. 총 페이지 수는 38쪽으로, 사진은 흑백이고 책자의 크기는 30㎝×21㎝이다. 첫 머리에 용인애향가[4절, 현재 5절까지 있음]와 포은 정몽주 선생 묘역사진이 수록되어 있고 제 1, 2, 3대 국회의원, 도의원...
-
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쉼터와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위한 유용한 공간도 제공한다. 건축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주거건축, 종교건축, 관청건축, 휴양건축, 복지와 교육건축, 상업과 공업건축 등으로 분류될 수...
-
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관광이라는 말의 어원은 중국 주(周)나라(B.C.12~A.D.3) 때의 역경(易經) 가운데 “관국지광 이용빈우왕(觀國之光 利用賓于王)” 이라는 구절에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관광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볼 수 있다. 이 당시의 관광 여행은 종교적·민속적 색채가 강했다.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와 정착되면서 전국 각지에...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용인 지역에서 교육은 오래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실시가 되었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은 조선시대 이후이다. 조선시대에는 공적 교육기관인 향교나 재지 사족들이 선현의 제향을 위해 세운 서원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용인 지역에는 포은 정몽주 등 많은 선현의 유택이 있다. 따라서 그 학덕을 따르기 위해 이주...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아버지는 대광(大匡) 김정(金鼎)이다. 아들은 김처(金處)와 김허(金虛)이다. 아들 김처는 아버지가 명나라에서 죽자 미쳤으며, 김허는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371년(공민왕 20)에 실시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로로 나섰다. 이후 전교주부(典敎注簿)가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개국공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남천로(南天老),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남을번(南乙蕃)이며, 형은 영의정 남재(南在), 아우는 우정승 남지(南贄)이다. 1374년(공민왕 23) 성균시에 급제, 1380년(우왕 6) 사직단직(社稷壇直)이 되고 이어서 삼척지군사(三陟知郡事)가 되어 왜구를 격퇴,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올랐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에 능곡(陵谷)과 원촌(院忖)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능원리라 하였다. 능곡은 정몽주의 무덤이 있기에 이것을 능에 비유하여 능골이었다가 능곡이 되었고, 원촌은 포은 정몽주의 신위를 모신 충렬서원이 있어 유래했다. 원래 옛 용인군 모현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우명동·내곡·원촌·능곡의 4개 동·리를...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정몽주 묘소 앞에 세워진 하마비. 정몽주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 묘역 앞에서는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비문을 새겨놓았다. 용인시 모현읍 죽전리에서 능원리 간 국도 43호선 오른쪽, 정몽주 묘역 입구로 들어가면 영모교와 인접하여 서북향(西北向)으로 서 있다. 비좌와 월두형의 비신을 갖추고 있다...
-
능원마을은 북쪽으로 숫돌봉이 솟아서 좌우로 능선이 발달하여 광주시 오포읍과 경계를 이루고 이으며 멀리는 성남시 분당이 된다. 마을 앞에는 오산리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산리에서 경안천과 합류하는 오산천이 흐르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서출동류(西出東流)라고 하는 명당의 한 기본요소를 충족시킨다. 오산천을 따라 수지와 광주를 연결하는 43번 국도가 관통하고 있으며...
-
능원 일대에 세거하는 성씨로는 영일정씨(迎日鄭氏)와 연안이씨(延安李氏)를 들 수 있다. 영일정씨는 본래 연일정씨(延日鄭氏)라고 하는데 연일이 영일군에 포함된 면(面)이 되면서 영일로 관향(貫鄕)을 통일하게 되었다. 영일정씨가 능원 일대에 터를 잡게 된 것은 안골에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유택(幽宅)이 자리 잡게 된 데서 연유한다. 포은 선생의 묘소가 이곳에 자리...
-
능원마을은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 속하는 마을로 용인 지역의 북단에 자리 잡고 있다. 북쪽은 광주(廣州)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은 같은 리(里)에 속하는 우명동 마을이, 동쪽은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陵坪里)와 이웃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오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쪽을 제외하고 구릉성 산지로 막혀 있는 작은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43번 국도가 동서를 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속하는 행정읍. 이 지역은 본래 쇄포면(灑布面)이라 하였다. 이는 삼으로 직조한 베와 목화에서 뽑아 낸 실로 직조한 무명천을 잿물에 삶아내고 물에 담궜다가 햇볕에 널어 말려 빛이 바래도록 포쇄하던 곳이라고 한데서 연유되었다. 그 뒤 고려 충신 정몽주의 묘가 있게 된 뒤로 충신을 사모한다는 뜻에서 모현으로 개칭되었다. 본래 용인군 지역으로 초하·부곡...
-
조선 후기 숙종이 정몽주가 남긴 문집을 읽고 지은 어제시(御製詩). 「문충공문집에서 유상을 보고 느낌이 있어서 지은 찬」의 원 제목은 「문충공문집중견유상유감작찬(文忠公文集中見遺像有感作贊)」이다. 숙종이 포은 정몽주의 문집을 보고 느낌이 있어서 지은 8언 8행의 고시이다. 현재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포은영당의 벽에 시판(詩板)으로 걸려 있다. 포은...
-
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 비는 내용에 따라 불교유적과 관련된 탑비(塔碑)와 유교유적과 관련된 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탑비는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이고, 묘비와 신도비는 공업(功業)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
-
경기도 용인시에 분포되어 있는, 조상의 신주, 영정을 모셔 두고 제향을 행하는 장소. 지역에 따라 향현사(鄕賢祠)·향사(鄕祠)·이사(里祠)·영당(影堂)·별묘(別廟)·세덕사(世德祠)·유애사(遺愛祠)·생사당(生祠堂)·사당(祠堂) 등으로 불리는 사우(祠宇)는, 조상의 신주와 영정을 모셔 두고 연 수 차례에 걸쳐 제향을 행하는 장소이다. 보통 반가의 사우에서는 부모와 조부모,...
-
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하여 설립된 경기도 용인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우리나라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후기의 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다. 조선의 서원은 성립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서 큰 차이를...
-
1740년 영조가 선죽교를 지나다가 느낀 감회를 지은 어제시(御製詩). 「선죽교시(善竹橋詩)」는 영조가 선죽교를 지나가다 포은 정몽주의 도덕과 충정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한시 작품이다. 본래는 석비에 새기어 개성의 선죽교 옆에 세운 것으로, 훗날 시판(詩板)으로 만들어져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포은선생영당의 벽에 걸렸다. 칠언으로 2구만 전한다. 소지(小識)에 「선...
-
본관은 영일이며 휘(諱)는 보(保)요 호(號)는 설곡(雪谷)이며 중추원사 정종성(鄭宗誠)의 아들이고 포은 선생의 장손(長孫)이다.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예안현감(禮安縣監)에 이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이르렀다. 조선 문신으로 학문이 뛰어나 세종(世宗)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친교가 두터웠다. 1456년(세조 2)...
-
조선 후기 충렬서원의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은진.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또는 우재(尤齋). 증조부는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 조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선산곽씨로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25년(인조 3) 도사 이덕사(李德泗)의 딸 한산이씨와 혼인하...
-
조선 후기 숙종이 포은 정몽주를 생각하며 지은 어제시(御製詩). 「숙종대왕 어제시(肅宗大王 御製詩)」는 숙종(肅宗)[1661~1720]이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정경세(鄭經世)의 시문집인 『우복집』을 보다가, ‘포은 정몽주의 운을 차하여(次圃隱鄭公夢周之韻)’라는 글귀를 발견하고 못 견디게 상심되어 그 운으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이다. 현재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용인시의 역사. 용인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이래의 변화를 거쳐 1413년(태종 13)에 등장했다. 오늘날 용인시의 영역이 형성된 것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용인군과 양지군, 죽산군의 일부가 통합됨으로써 그 모태가 마련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은 지역 내외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 오는 가운데 형성된...
-
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석형(李石亨)과 이원발(李元發)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는 이무(李茂)이다. 본래 당나라 사람으로 백제를 침공할 때 소정방을 따라온 장수였다고 한다. 지금의 황해도 연안(延安)을 지키다가 당이 측천무후의 전횡으로 어지러워지자 신라에 귀순하였다. 김유신의 주청으로 연안을 식읍으로 주어 연안후에 봉해졌다. 저헌(樗軒) 이석형, 이...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정몽주 묘소의 재실. 영모재는 포은 정몽주의 후손들이 묘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한 건물이다. 이러한 용도의 건물을 재실(齋室), 또는 재사(齋舍)라고 하는데,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飮福)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각종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이 주요 기능이다....
-
정습명을 시조로 하고 정보와 정지한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는 신라 때 간관(諫官)을 지낸 정종은(鄭宗殷)이며 그 후손인 정습명(鄭襲明)을 중시조로 하는 지주사공파와 정극유(鄭克儒)를 중시조로 하는 감무공파가 있다. 이 양파는 시조를 같이하면서도 그 중간 계보를 잃어버려 서로 촌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고려 말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가 가장 유명하며...
-
모든 정(鄭)씨의 시조는 신라 초기 6촌장 가운데 한 사람인 지백호(智伯虎)라고 하는데 이후의 계보는 상고(詳考)할 길이 없다. 영일을 본관으로 하는 정씨는 모두 신라 때 호장을 지낸 종은(宗殷)이며 이후 크게 두 파로 갈라지게 된다. 그 하나는 고려(高麗) 의종(毅宗) 때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형양공(滎陽公) 습명(襲明)을 1세조(世祖)로 하는 지주사공파...
-
조선 후기 숙종이 정몽주의 「단심가」를 읽고 감회를 적은 어제시(御製詩). 「영정포은단심가(詠鄭圃隱丹心歌)」는 2003년 『모현면지』에「정포은의 단심가를 읊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는데, 숙종(肅宗)[1661~1720]이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를 읽고 느낀 감회를 적은 오언절구의 한시이다. 숙종은 이와 같이 정몽주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는 시를 짓고 이를 시판(詩...
-
능원리는 1914년에 생긴 이름이다. 모현면에 속한 우명동과 원촌을 합치고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가 있는 능내[내기] 마을과 원촌의 첫 글자를 따서 능원리라고 하였다. 능원마을은 능원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능원1리가 되며 원촌(院村)이라고도 하는데, 포은 선생을 모신 충렬서원(忠烈書院)이 있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선조대왕의 왕후의 능(陵)자리...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광조를 모신 서원.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사림파의 대표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1519년 기묘사화 때 죽음을 당하였다. 심곡서원은 1650년(효종 원년)에 ‘심곡(深谷)’이라는 사액현판과 토지와 노비 등을 임금에게 하사받았다. 흥선대원군이 서원...
-
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회화가 문사들의 예술 장르로서 애호되었다. 시·서에 뛰어난 문사들은 자신들의 뜻과 흥취를 표현하거나 탈속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것을 기본적인 교양이자 고상한 풍류로 여겼다. 이와 같이 시·서와 더불어 문인 문화의 핵심을 이루었던 조선시대 회화는 특히 문사들에 의해 창작이념과 취향이 계도되면서 중세적 감상물로서의 성격을 형성하는 특징을...
-
1899년 용인군에서 전국적인 읍지 편찬과 상송령에 따라 작성한 읍지. 1895년 지방관제 개편으로 용인현이 용인군으로 변경되어 충주부에 편제되었다가 1896년 4등군으로 지정되어 경기도 관할이 되었다. 그 사정을 담아 1899년 읍지 편찬과 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여 간행한 자료이다. 1권 1책이며, 필사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표제는 용인군지도읍지(龍仁郡地圖邑誌...
-
조선 후기 이덕무가 용인을 지나면서 감회를 적은 칠언율시의 한시.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문집인 『청장관전서(青荘館全書)』 「아정유고(雅亭遺稿)」에 전하는 작품으로, 이덕무가 용인을 지나면서 감회를 읊은 한시이다. 『용구문화』6에는 「용인을 지나는 도중에」로 번역·소개되었다. 전체 분위기로 보아 가을걷이가 끝난 늦가을에 지은 작품이다. 늦가을의 정취가 회화...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조선 전기에 세워진 향교. 용인향교는 1400년(정종 2)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나 용인이란 지명이 1413년(태종 13)에 생겼으므로 그 이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1986년 5월 31일 용인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9월 10일에 문화재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용인향...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는 종교의 범주에 넣어 이야기...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유교 관련 단체와 기관. 유교단체란 유교적 교리에 바탕을 둔 각종 단체를 말한다. 유교단체로서 대표적인 것은 전통 시대에 유교의 교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 조직인 향교와 서원 등을 꼽을 수 있다. 나아가 향약(鄕約)에 바탕을 둔 향촌사회의 각종 계 조직이나 문인들이 선현의 정신을 기리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만든 각종 유계(儒契) 같은 사적인 모...
-
경기도 용인시에 분포되어 있는 유교 관련 유적과 유물. 유교유물유적은 크게 유적 자료와 유물 자료로 나눌 수 있다. 용인 지역에서 전해 오는 유적 자료로는 서원, 향교, 사우, 누정, 정려, 비석 등의 건축물 등을 들 수 있다. 또 유물 자료로는 서원·향교 등에서 제사 의식 때 사용하는 신주(神主)와 제기, 유교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문집과 가문의 역사를 담은 기록인 족보...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기계. 자는 사호(士鎬), 호는 대재(大齋)이다. 권상하(權尙夏)·이재(李縡)의 문인이다. 유일로 천거되어 세자시강원 자의(諮議)가 되었다. 그 후 사헌부 지평, 집의, 경연관 등을 역임하였고, 이조·형조·호조의 참의를 거쳐 돈녕부도정에 이르렀다가 사직한 후 안성에 은거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1782년(정조 6)부터...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 중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 2007년 10월 현재 경기도 용인시에는 국가지정 유형문화재로 국보 9점, 보물 37점과 경기도에서 지정한 경기도유형문화재 12점이 있다. 용인시청에서는 국가지정 문화재 중 보물 9점과 경기도유형문화재 8점을 집중 관리·소개하고 있다. 광교산 동쪽 서봉사(瑞峰寺) 터에 있는...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계행(啓行), 호는 송서(松西), 시호는 문간이다. 현감 이희선(李羲先)의 아들이다. 1822년(순조 2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직각·이조참의·이조참판·평안도관찰사·대사간·대사헌·한성판윤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849년 철종이 즉위하자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고종 때 영의정에 올랐고 1860...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평은(平隱). 구성부원군 이중인(李仲仁)의 맏아들이다. 이사영(李士穎)[?~1406]은 일찍 문과에 급제하여 청주목사(淸州牧使), 안동부사(安東府使), 형조전서(刑曹典書)를 거쳐 1391년(공양왕 3) 밀직사우대언(密直使右代言)에 임명되었으나, 정몽주(鄭夢周)가 격살된 후 당여(黨與)로 몰려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등...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지후(祗候) 이석(李奭)이고, 할아버지는 판서(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 구성부원군(駒城府院君) 충숙공(忠肅公) 이중인(李中仁)이다. 문효공(文孝公) 전신(全信)의 외손이다. 형제로는 전서(全書)를 지낸 형 이사영(李士潁)과 지주사(知州事)를 지낸 아우 이사이(李士彛)가 있다. 아들은 이백지(李...
-
조선 전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1415~1477]은 세종 대부터 성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김반(金泮)의 문인이다. 뛰어난 학문으로 당대 8대 문장가로 꼽히기도 하였다. 집현전학사였으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에는 포함되지 않으며,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짓는 것에 그쳤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에 “중국은 다만 성곽(城郭)만이...
-
고려 말기의 문신. 이중인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충숙왕 2년에 개경의 일청재(一淸齋)에서 태어났다. 소위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사람이다.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진초(秦楚). 증조부는 내시낭중(內侍郎中) 이유정(李惟精)이고, 조부는 합문지후(閤門祗候) 이석(李奭)이며, 아버지는 판도판서(板圖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어머니는 행주기씨(幸州奇氏)...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이호(而灝). 증조부는 임천부사 이종무(李宗茂)이며, 할아버지는 증 좌의정(贈左議政) 이회림(李懷林)이다. 아버지는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이다.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로, 감찰(監察) 정보(鄭保)의 딸이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증손녀이다. 부인은 죽산안씨(竹山安氏)로, 사정(司正) 안미(...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성유(聖由). 정몽주(鄭夢周)의 10세손으로, 영장(營將) 정주한(鄭周翰)의 아들이다. 정덕징(鄭德徵)[1657~1739]은 조선 후기 효종 대에서 영조 대에 활동한 인물로 궁술(弓術)과 마술(馬術)에 뛰어났다. 1680년(숙종 6)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고, 훈련원주부·판관·서생첨사(西生僉使)·진안현감...
-
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정운관(鄭云瓘)의 아들이다. 1357년(공민왕 6)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하여 1362년 예문관의 검열·수찬이 되었다. 이때 김득배(金得培)가 홍건적을 격파하여 서울을 수복하고서도 김용(金鏞...
-
충렬서원 영당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말기에 그려진 고려 후기의 문신 정몽주의 초상화. 원래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초상화로 알려진 작품은 1390년(공양왕 2)에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녹봉될 때 그려진 공신도상(功臣圖像)이라고 하나, 현전하는 작품은 모두 그 후대에 이모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초상화는 보물 제1110호로 지정된 인조기사모...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정몽주의 묘. 정몽주(鄭夢周)[1337~1392]는 고려 후기에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세우고 개혁을 주도하였다. 조준, 정도전 등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정몽주는 고려왕조의 명맥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자 이방원의 부하 조영규 등이 정몽주를 살해하였다. 성리학에 매우 밝았던 정몽주는 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설곡(雪谷).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포은(圃隱) 정몽주이며, 아버지는 이조참의 정종성(鄭宗誠)이다. 어머니는 죽산박씨로 제학(提學) 박중용(朴仲容)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병마사(兵馬使) 박등(朴登)의 딸이다. 아들은 정윤정(鄭允貞)·정윤화(鄭允和)·정윤관(鄭允寬)이고, 사위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사수(士守). 정몽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정응선(鄭膺善)이다. 정준은 희릉참봉·건원릉참봉을 거쳐 제용감봉사·사재감직장·장흥고주부와 돈령부주부를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조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와서별제(瓦署別提)가 되었다. 이듬해 중국 청(淸)의 태종이 인조의 항복을 받고 이를 기념하는 삼전도비(三田渡碑)를 세우게...
-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정찬술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한 무신으로 경기도 용인시 왕산리 왕곡마을에서 생활하였다. 83세까지 장수하여 회혼례를 올렸으며, 증손자가 정몽주(鄭夢周)의 사손으로 정해짐으로써 정몽주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술보(述甫). 정몽주(鄭夢周)의 11대손으로 아버지는 수군방어사(水軍防禦使) 정도징(鄭道徵)이며,...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일(迎日). 일명 고철(高哲). 고려 말기의 충신 정몽주의 대종손으로, 아버지는 정의열(鄭義烈)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이다. 정철수는 1943년 12월 보성전문학교 3학년 재학 중에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당하였다. 중국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의 황군 부대에서 근무하던 중 동료 두 명과 함께 탈출에 성공해 팔로군에 투항한 뒤,...
-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이자 영일정씨 주부공파의 파조.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선술(善述), 호는 구정(駒亭).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7세손으로, 정림(鄭霖)의 둘째 아들이다. 1606년(선조 39)에 식년시(式年試) 2등에 합격하여 진사(進士)에 오르고, 1642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종묘직장(宗廟直長)에서 호조의 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로 2계급...
-
조선 중기의 무신. 1611년(광해군 3)에 알성(謁聖) 무과에 급제하였고 도총부도사를 역임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이르렀으나, 이미 적들이 남한산성을 에워싸고 사태가 위급하게 되자 자원하여 출전하였다. 정탁은 북문 밖으로 나아가 장수기를 흔들고 크게 소리쳐 적의 기세를 크게 꺾고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후원을 받지 못하여 패하였고 그 곳에서 죽었...
-
1707년(숙종 33) 숙종이 정몽주의 절의를 칭송하며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 세 편. 「정포은(鄭圃隱)」은 조선의 제19대 왕인 숙종(肅宗)[1661~1720]이 지은 어제시(御製詩)로,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포은영당(圃隱影堂) 벽에 오태주(吳泰周)의 발문이 함께 시판(詩板)으로 걸려 있다. 오언절구의 한시 작품으로,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
조선 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윤칠(允七), 호는 모은(慕隱). 포은 정몽주의 18세손이고, 아버지는 정구현(鄭九鉉)이다. 정한영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발랐으며, 유가의 법도에 따른 특출한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한영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관직은 종사랑과 감리서주사(監理署主事)를 지냈...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조선 말기 정한영의 효자비. 정한영(鄭漢永)은 정몽주의 19대손인 정구현(鄭九鉉)의 아들로, 조선 말기인 1862년에 태어났다. 벼슬은 종사량(從仕良)으로 감리서주사를 지냈다. 성품이 바르고 총명하였으며, 평소 정성을 다해 부모를 섬기어 인근에 효자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정한영은 평소 부모를 정성껏 섬기고,...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증조할아버지는 조육(趙育)이고, 할아버지는 사예(司藝) 조충손(趙衷孫)이며, 아버지는 감찰(監察) 조원강(趙元綱)이다. 부인은 첨사(僉使) 이윤동(李允洞)의 딸이다. 아들은 조용(趙容)이다.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한성부 중부 행교동(현재 종로구 경운동)에 거주하였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조사의 사당. 조사(趙師)의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가천재(嘉川齋)로 태조의 생질이다. 태조가 조선 개국 후 중추부사를 제수하였으나, 고려 공양왕 밑에서 벼슬한 일을 내세워 조정에 나아가지 않고 양양(襄陽)에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죽기 전에 후손에게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에 있는 영일정씨 주부공 정충전의 신위를 주향한 사당. 청덕재는 포은 정몽주의 7대손 정충전(鄭忠傳)과 그 후손의 제향을 받드는 사묘이다. 정충전은 1567년(명종 22) 10월 13일에 출생, 1624년 이괄의 난 때 종묘의 직장으로서 임금을 호종하였다. 어가가 진위현에 이르러 수레꾼들이 모두 흩어지자 정충전은 수레를 끌어 공주 행...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원. 충렬서원은 고려 후기의 충신이자 동방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중기인 1576년(선조 9)에 지은 서원 건물이다. 그후 마을 이름도 충신을 사모한다고 해서 ‘모현면[현 모현읍]’으로, 정몽주의 묘소와 서원이 있다고 해서...
-
1608년(선조 41) 이정구가 충렬서원에 내린 사액을 기록한 기문. 「충렬서원 강당기(忠烈書院 講堂記)」는 충렬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린 기문(記文)으로, 충렬서원에 사액(賜額)이 내리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이정구(李廷亀)[1564~1635]가 지은 기문이다. 이정구의 문집인 『월사집(月沙集)』에도 전한다. 충렬서원은 고려 말기의 문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
-
조선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충렬서원 역대 원장을 기록한 책첩. 충렬서원은 고려 말기의 문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를 배향한 서원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다. 1609년(광해군 1)에 사액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1년에 복원되었다. 『충렬서원 선생안(忠烈書院 先生案)』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기까...
-
조선 중기 정명한이 충렬서원의 강당과 사당 등을 중수한 내용을 기록한 부책. 충렬서원(忠烈書院)은 고려 말기의 문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를 배향한 서원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다. 1576년(선조 9)에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선조 38)에 경기도관찰사로 있던 이정구(李廷龜)[1564~1635]가 현감 정종선,...
-
조선시대 이래 경기도 용인의 충렬서원에서 행해지는 향례. 충렬서원은 포은 정몽주를 주벽(主壁)으로 모시고 있으며, 이시직·정보·오달제를 종향하고 있다. 향사는 춘향(春享)과 추향(秋享)을 지내며, 매년 3월과 9월 중정일(中丁日)에 행한다. 용인 지역의 유림과 행정 단체장, 정몽주 후손 등 150여 명이 참석한다. 충렬서원 제집사(諸執事)는 헌관과 집사로 구분...
-
충렬서원은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시는 서원이다.충렬서원 전경 포은 선생은 동방 성리학의 조종(祖宗)으로 추앙되어 서원을 세우기 위한 논의가 일찍부터 있었으나 1576년(선조 9) 현재의 죽전에 정암 조광조 선생과 함께 모시는 서원을 창건하게 되었다. 충렬서원과 관련된 기록 등을 참고하면 죽전서원이라고 불렀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불타버린 후 1605년(...
-
조선 후기에 이재가 충렬서원 유생들이 원내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정리한 고문서. 『충렬서원학규』에 기록 된 절목(節目)은 서원 이외에 용인 지역에 있던 각급 향숙(鄕塾)에서도 본받아 유생의 교육 규범으로 활용되었다. 이재(李縡)[1737~1748]가 성책하면서 『소학』 등의 교재를 읽기 전에 먼저 정몽주의 글을 읽을 것을 권면하는 글을 서문에 남긴 것이 다른 학규에서 볼...
-
충절의 상징이요, 성리학의 조종으로 추앙되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출생지는 경상북도 영천군 동우항리이다. 포은 선생의 어머니는 영천이씨인데, 임신 중에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려 깜짝 놀란 꿈을 꾸고 나서 낳은 아이라고 하여 처음에는 이름을 몽란(夢蘭)이라 하였다. 포은 선생이 아홉 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영천이씨가 낮잠을 자다...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배출된 충신, 효자·효부 그리고 열부·열녀들. 충효열이란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녀자가 지조를 지켜 남편을 따라 순절하는 행실을 통칭한 것으로 이를 삼강행실이라고 하였으며 유교 이념의 기본 덕목이다. 충(忠)은 삼강행실의 첫 번째 덕목이다. 용인의 대표적 인물은 포은 정몽주이다. 그는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충의백(忠毅伯)으로서 사...
-
포은 정몽주 선생은 선죽교에서 돌아가셨는데 이미 죽음을 예견하고 말을 거꾸로 타고 갔다고 한다. 선죽교에는 지금도 피흘린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하며 처음에는 풍덕(개성 부근)에 봉분도 없이 평장을 했다가 6년 뒤에 신원(伸寃)되어 고향인 경상도 영천으로 천장하고자 하였다. 행렬이 지금의 수지구 풍덕천동에 이르렀을 때 명정이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날리는 방향으로 쫓...
-
포은문화제는 포은 선생이 탄생하신 지 666주년이 되는 2003년 6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용인이 동방성리학의 성지로써 재인식되기를 기대하며 해마다 5월경에 치러지는 포은문화제는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하나 개성에서 용인으로 상여 행렬이 오는 것을 재현한 천장행렬과 추모제례가 중심이 된다. 포은 선생의 유해가 지금의 묘역으로 옮겨진 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인 정몽주 종택의 사당. 포은선생영당(圃隱先生影堂)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종택에 있는 사당으로, 조선 후기인 1679년(숙종 5)에 처음 지어졌다. 영당이란 원래 이름난 이의 화상이나 조각상을 모시어 둔 사당을 말한다. 포은선생영당에서는 음력 4월 4일에 포은 선생의 제사...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1동 안산 남단 해발 100m 고지에서 발원하여 성복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광교산[582m]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풍덕천동 중앙을 가로질러 동류하는 주요 하천인 정평천이 있다. 정평천은 풍덕천 동단에서 성복천에 유입된다. 풍덕천은 이 성복천의 작은 지천으로 해발 100m의 평지에서 발원, 동류하여 아파트단지 사이를 흐르다 성복천에...
-
한국민속촌은 197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 사라져 가는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보존·전승하여 어린이 및 청소년들의 현장학습장으로 활용하며, 나아가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조성된 국제 관광지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전통생활 문화가 총체적으로 재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문화예술까지도 향유할 수 있도록 꾸며져, 명실상부 종합 휴양 시설로서의 면모를 구축해 가고 있...
-
이윤경을 시조로 하고 이자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한산이씨(韓山李氏)의 시조는 고려 숙종 때 호족으로서 권지호장직(權知戶長職)에 오른 이윤경(李允卿)이다. 중시조는 목은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이다. 이곡은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으로 당대의 대문장으로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경학의 대가였다. 이곡의 문하에서 권근·변계량 등의 학...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육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한양조씨의 시조는 고려 때 첨의중서사를 지낸 조지수이다. 한양조씨 가문에서는 조선 개국공신이 2명이 배출되었는데, 태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조인옥(趙仁沃)과 태종 때 찬성사를 지낸 조온(趙溫)이다. 한양조씨 가운데서 가장 번창하였던 가문은 판도판서 조인벽(趙仁璧)의 아들 4형제의 후손이다....
-
본관은 영일이며 포은 정몽주 선생의 직계 대종손으로 능원리 7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현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정문학교 법과(法科)에 재학하던 중 1944년 일제의 강요에 의해 강제로 학병(學兵)으로 끌려갔다. 중국 산동성의 성도(省都)인 제남(濟南)에서 탈출하여 팔로군에 투신하여 1944년 3월부터 조선독립동맹 태항분원에 들어갔다. 이름도 정고철(鄭高哲)로 고친 후 조...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루어진 문학 활동. 용인 지역은 근대적인 문학이 태동되기 이전부터 문화예술의 전통과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통시대 문인들의 활동이 꾸준히 이어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단심가」로 알려진 포은(圃隱) 정몽주의 묘소와 시비가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것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천재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읍취헌(挹翠軒...
-
조선 후기 기호 지역에서 일어난 심성(心性)에 관한 학설 논쟁. 호락논쟁(湖洛論爭)은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이라고도 한다. 이는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한원진(韓元震) 등을 지지한 이들이 충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살았으므로 호론(湖論)이라 하며,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한 이간(李柬)·이재(李縡)를 지지한 이들은 서울·경기 낙하(洛下) 지역에 주로 살았으므로...
-
본관은 영일이며 포은 정몽주 선생의 18대 손으로 능원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윤칠(允七)이며 호는 모은(慕隱)이다. 관직은 종사랑, 감리서 주사를 지냈다. 성품이 바르고 총명하였으며 평소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의 상을 당하여 삼년간 시묘하였고 유가(儒家)의 법도에 따른 특출한 효행으로 향당(鄕黨)이 효자비를 건립하였다. 효자비정한영 효자비는 능원마을 입구에 있는 비각 안에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