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로 용인에서 성장한 인물. 본관은 김해. 증조부는 김진후(金震厚)[비오, 1738~1814], 할아버지는 김택현(金澤鉉), 아버지는 김제준(金濟俊)[이냐시오, 1796~1839]이고 어머니는 장흥고씨 우르슬라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김재복(金再福), 족보에 올려진 이름은 김지식(金芝植), 어른이 되었을 때의 이름은 김대건(金大建), 세례명은 안드레아이...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호는 1937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주로 중국 난징[南京]에서 한국인 유학생을 포섭하거나 남경군관학교 생도들을 모집하는 등 지하활동을 하였다. 이 같은 활동을 하던 중 1944년 8월 15일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의 탐지를 받고 붙잡히고 말았다. 일제에 체포된 김병호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6년형을...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주원은 대한제국의 군부 경리국 제1과장 3등 감독을 역임하였으며, 황해도 연안군과 전라남도 옥과군의 군수를 지내는 고위 관직에 있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관직을 사퇴하고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그 후 중국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등지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을 모색하다가, 1915년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신규...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오산(午山), 이명(異名)은 남영득(南英得, 南寧得)이다. 남정각은 1913년 3월까지 한학을 수학하고 서울기독교청년회 공업과에 입학하였다가 그 이듬해에 중퇴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수원에서 만세 시위 운동에 참가하는 한편 수원·안성·용인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독립신문』을 비밀리에 배부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하여 만세...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있는 성일산업(주)의 기계 자수 공장. 성일산업(주)은 1973년 5월 5일 자본금 1천만 원으로 설립됐다. 성일산업은 기계 자수에 대한 주문량이 늘면서 1977년 1월 9일 제2공장으로 용인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용인공장의 규모는 대지 면적 7002.6㎡(2,122평), 건물 연면적 6045.6㎡(1,832평), 자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에 있는 발포 제품 전문 제조업체. 1982년 폴리에틸렌 가공 및 플랜트 설비 생산 기업으로 창립되어 안정된 영업 시스템과 지속적인 기술 개발로 발포 업계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산업체로 성장해 오고 있는 기업이다. 1982년 3월 도·소매업체인 세화상사로부터 출발하여 1988년 1월 (주)세화 법인을 설립하였다. 1997년 3월 ISO 9...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시당(時堂), 이명(異名)은 조현(祖鉉, 肇鉉)이다. 여준은 1906년 이상설(李相卨)·정순만(鄭淳萬)·이동녕(李東寧)·박정서(朴禎瑞)·김우용(金禹鏞)·황달영(黃達永) 등과 함께 북간도 룽징[龍井]에서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설립하여 항일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1912년에는 독립군을 양성하는 신흥강습소의 유지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의선은 1919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재학 중 2·8독립선언이 있자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그 해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경기도 대표 신석우(申錫雨)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초대 의원이 되었으며, 청원법률심사위원회 위원, 세칙제정위원회 위원, 예산결산위원장 등에 선임되어 활...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명리에 있는 액정 표시 장치 제조업체. 1986년 7월 1일 주식회사 원우정밀을 설립하였다. 1995년 오산 제 2공장 설립, 1996년에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을 설립하였고, 2000년 2월에는 중국상하이 공장을 건립하였다. 2002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공장을 준공하였다. (주)원우정밀은 1991년 11월에 1000만...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석농(石儂), 자는 경집(敬集)이다. 유근은 1898년 5월 남궁억·나수연 등과 함께 『황성신문』을 창간하였으며, 1905년 11월에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침탈하자 매국 관료를 통렬히 비판하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황제와 각부 대신들을 협박한 사실...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덕수(德水). 일명 방(芳)·윤봉조(尹鳳朝), 자는 만위(晩瑋), 호는 춘호(春湖)·한정(漢汀)·법명(法明). 아버지는 이종백(李種百)의 아들로 이현(李賢)에게 입양되었다. 이정열은 천석꾼의 부자로 3·1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그 해 10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던 강태동(姜...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일영은 1900년 통신사(通信司) 전화과(電話課) 주사, 1904년 환구단(圜丘壇) 사제서령(祀祭署令), 봉상사(奉常司) 주사 등을 지내다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후 해임되었다. 일제강점 후 1915년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의 성낙형(成樂馨)·김주원(金胄元) 등과 연결되어 고종의 해외 망명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박봉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