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묘제 중 하나. 고인돌은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예부터 고엔돌·되무덤·도무덤 등으로 부르거나 거북바위·독바위·칠성바위·마귀할멈 바위 등으로 불려진다. 대부분 강이나 바닷가 옆의 평지, 구릉 지대에 있으며 드물게는 산기슭이나 산마루에 있는 경우도 있다. 기능에 따라 제단 고인돌과 무덤 고인돌...
조선 중기의 열녀. 본관은 온양. 아버지는 정돈지(鄭敦之)이고, 남편은 서흥김씨(瑞興金氏) 통덕랑 김배(金培)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이천(利川)의 거마산으로 피난하였으나 청군(淸軍)이 추격하여 왔다. 이에 욕을 면키 어렵고 그 몸이 더렵혀질까 두려워 두 딸과 함께 연못으로 투신하여 정절을 지켰다. 지금도 이천 자래동에 세 무덤이 있어...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수원부 양지현(현재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살던 선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1806년(순조 6) 각 지역 유생의 건의에 따라 예조에서 왕에게 효자를 보고하였는데, 이때 증직(贈職)의 특전을 받았다....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의병. 1727년(영조3) 청주에서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이 때 문성천은 양지현(지금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거주하던 가의대부(嘉義大夫) 주헌(朱櫶)이 의병을 모집하자 그를 도와 좌찬현(佐贊峴)에서 서울로 진격하는 적을 막고 수백 여 명을 죽였다. 이 일이 임금께 보고되었으나 상을 받지 못하였다가, 1785년 경기관찰사 서...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강상죄인(綱常罪人). 1680년(숙종 6) 수원부 양지현(현재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주인을 죽인 죄인으로서 삼성(三省)에서 추국하자 스스로 시인하고 사형에 처해졌다....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송명천은 양지현(현재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여 주변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경기관찰사가 조정에 아뢰어 교생(校生)으로 있을 때인 1822년(순조 22) 11월 5일에 조세와 부역을 면제받았다....
조선 후기 양지현감을 역임한 문신. 이용신은 1724년(경종 4) 7월 양지현(현재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현감으로 부임하여 1728년(영조 4) 4월까지 역임하였다. 재임 기간에 아이들의 성과 이름을 초록(抄錄)해 두었다가 책(冊)을 만들었다. 그들이 장성하기를 기다렸다가 군액(軍額)에 충정(充定)하여 군영(軍營)에는 수효가 모자람이 없게 하고, 고을에서 백골(白骨)...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소재 양지초등학교 출신으로 독립운동가. 화성군 매송면 야목리에서 태어나 매송보통학교를 다니다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외가댁인 양지면 양지리에서 양지보통학교 3학년으로 전학하여 양지보통학교에서 졸업하였다. 양지보통학교는 친일파 송병준의 아들 송종헌이 적극 지원하던 학교로, 송종헌이 양지면 추계리 별장에 올 때는 학교 학생들이 일장기를...
임온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풍천임씨(豊川任氏)의 시조는 본래 중국 소흥부 자계현 사람으로 고려 때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에 오른 임온(任溫)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임온은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따라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풍천에 적을 둔 것으로 전하는데, 이로 인하여 후손들은 풍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