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신봉동과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에 걸쳐 있는 산. 『택리지』에는 "광교산으로부터 북쪽으로 관악산(冠岳山)이 되고 똑바로 서쪽으로 수리산(修理山)이 되어서 서해로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현(縣) 북쪽 20리에 있는데 서봉사(瑞峯寺)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용인군 『지도읍지』에는 "서봉산(瑞峯山)"으로 기록...
-
1637년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벌어진 청나라 군대와의 전투. 1637년 1월 4일부터 6일까지 전라병사 김준룡이 광교산에서 청나라 장수 양굴리[楊古利]가 이끄는 청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1636년 12월 1일, 청나라 태종이 조선을 침략하자 인조는 세자와 백관을 대동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이후 인조는 1만 3,000여 명의 군사로 남한산성을 지키도록 하고 도원수·부원...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사백(斯百), 호는 식암(息庵)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육(金堉)이고, 아버지는 병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이다. 1657년(효종 8) 진사가 되었으며,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장원하여 전적이 된 후 이조좌랑·정언·지평·부교리·수찬·헌납·교리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1674년 겸보덕(兼輔德)에 이어 좌부승지가 되었...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도상(道常), 호는 기오당(寄傲堂). 충정공 김약시(金若時)의 후손이다. 김우형은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1657년 정언(正言), 1661년 헌납·사간, 이듬해 집의·홍문관교리를 지냈고, 시독관으로 임금 앞에서 통감강목과 대학을 강론하였다. 1669년 좌부승지, 이듬해 도승지...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 김균(金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찰방 김성진(金聲振)이다. 처는 정응규(鄭應奎)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성균관에 있을 때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모하자 몇몇 유생들과 함께 이를 비판하는 복합상소를 올려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하옥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1627년 전주정시(...
-
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회정당(晦靜堂)이다. 증조부는 김덕수(金德秀), 할아버지는 김비(金棐),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고, 외조부는 조희맹(趙希孟)이다. 아들은 김좌명(金佐明), 손자는 김석주(金錫胄)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후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1610년(...
-
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광교산 전투에 참여한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수부(秀夫). 할아버지는 전설사별좌(典設司別座) 김영(金瑛)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두남(金斗南)이며, 어머니는 도호부사 김희필(金希弼)의 딸이다. 1608년(선조 41)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황해도·경상도·함경도의 병영에 근무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인동부사가 되었고,...
-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 자는 중휘(仲輝), 호는 의졸(宜拙). 좌의정 남지(南智)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강원도 평강현감 남식(南烒)이다. 어머니는 연산서씨 증참판 서주(徐澍)의 딸이다. 형은 남일성(南一星)이다. 부인은 청송심씨 감역 심지함(沈之涵)의 딸이다. 아들이 요절하여 남수만(南受萬)으로 뒤를 이었다. 딸이 둘 있는데 장녀는 우의정 민진장(閔鎭長)에게...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이거나 용인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용인의 독립운동가는 의병부대 및 항일 무장단체에서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이 밖에도 언론·외교 활동을 통해 국권 피탈의 상황을 국내외에 알려 독립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이끌어갔다. 우선 의병부대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을 살펴보면, 용인 지역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활약한 임옥여·정...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백운산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탄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동막천이 발원하는 용인시 고기동은 성남시, 의왕시 및 수원시 장안구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이곳에 바라산-백운산-광교산[582m]-형제봉 등 500m 내외의 산 능선이 남북 방향으로 쭉 뻗어 있어 황구지천의 최상류인 광교천과 탄천의 지류인 동막천, 손곡천의 분수계 역할을 하고...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유(聖猷), 호는 단암(丹巖)·세심(洗心)이다. 증조부는 민기(閔機), 할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 아버지는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이다. 외할아버지는 송준길(宋浚吉), 부인은 윤지선(尹趾善)의 딸이다. 또한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오빠이자 우참찬 민진후(閔鎭厚)의 동생이다. 아들은 민형수(閔亨洙)이...
-
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시첩. 『별장첩(別章帖)』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명준(吳命峻)[1662~?]이 청나라 연경에 사신으로 떠나기 전에, 당시 조정 중신과 동료들이 연행(燕行)을 전송하며 지은 시문을 모아 놓은 것이다. 불분권 2첩으로, 필사본이다. 표제는 별장첩(別章帖)이다. 크기는 가로 31㎝, 세로 51㎝이다. 상하...
-
조선 중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청나라 군대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 1627년(인조 5) 후금(後金)[뒤의 청나라]의 1차 침입 때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맹약을 하고 두 나라 관계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나라 이름을 청(淸)으로 고친 후금은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맹약’을 ‘군신(君臣)의 의(義)’로 개조하자고 요청을 해올 뿐 아니라 무리한 세폐와 정병 3만까지 요구해왔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고당리에서 고초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삼학사 전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달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오달제(吳達濟)를 말한다. 오달제는 1609년(광해군 원년)에 용인에서 오윤해의 아들로 태어났다. 1634년(인조 12)에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에 올랐고, 2년 뒤에 부교리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의를...
-
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평보(平甫), 호는 소고(嘯皐)·재간(在澗)·보졸재(保拙齋)·송현(松峴), 시호는 문익(文翼). 증조부는 남원부사 서정리(徐貞履), 조부는 병조참의 서문상(徐文尙), 아버지는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이다. 어머니는 이헌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아들 서지수(徐志修)까지 3대가 대신을 지냈으며, 부인 또한 3대가 대신을 지낸...
-
조선 후기 충렬서원의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은진.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또는 우재(尤齋). 증조부는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 조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선산곽씨로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25년(인조 3) 도사 이덕사(李德泗)의 딸 한산이씨와 혼인하...
-
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원지(源之), 호는 만사(晩沙)이다. 증조부는 심금(沈錦), 할아버지는 심종열(沈宗悅), 아버지는 심설(沈偰)이다. 외조부는 청원도정(靑原都正)이었던 이간(李侃)이고, 부인은 윤종지(尹宗之)의 딸이며, 그의 아들 심익현은 효종의 딸 숙명공주와 결혼해 효종과는 사돈관계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정시문과에 병과...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자장(子章), 호는 창주(滄洲). 심탁(沈倬)의 아들이며, 정엽(鄭曄)의 문인이다. 심지한은 1618년(광해군 10) 동학유생(東學儒生)으로 조경기(趙慶起) 등 8인과 함께 폐모론을 주도하는 이위경(李偉卿)·정조(鄭造)·윤인(尹認) 등을 극형에 처하도록 상소하였다. 이 일로 아버지 심탁과 함께 가산이 적몰되고, 문외출송(門外黜...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죽계(竹溪). 자는 흥숙(興叔), 호는 우졸재(愚拙齋)·백암(栢巖). 관찰사(觀察使) 안종도(安宗道)의 증손이며, 좌찬성으로 추증된 안세복(安世復)의 손자이며, 순양군(順陽君) 안몽윤(安夢尹)의 아들이다. 첫째 부인은 판서 이경황(李慶滉)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는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의 사...
-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집(聖執), 호는 일재(一齋). 어약우(魚若愚)의 아들이다. 어윤중은 9세에 어머니를, 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하면서 밤에는 독서를 하였다. 20세 때인 1868년(고종 5) 지방유생 50명을 뽑아 바로 전시(殿試)를 볼 수 있는 칠석제(七夕製)에 합격하고, 이듬해인 186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
-
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시집. 1723년(경종 3)에 오명준(吳命峻)[1662~?]이 사신으로 청나라의 연경(燕京)에 가게 되자, 이를 송별하기 위한 연회에서 동생과 친구들이 지어 준 시를 모아 간행하였다. 불분권 1첩이며, 필사본이다. 표제는 연행별어(燕行別語)이다. 크기는 가로 32.2㎝, 세로 48.5㎝이다. 동생 오명항(吳命恒)...
-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조영복이 북경을 다녀오면서 쓴 일기와 동료 대신들과 주고받은 송별시 및 편지 등을 모은 첩. ‘연행일록, 연행별장 외 명현간찰(燕行日錄, 燕行別章 外 名賢簡札)’은 이지당(二知堂) 조영복(趙栄福)[1672~1728]이 지은 『연행일록(燕行日錄)』 1책, 『연행별장(燕行別章)』 1책, 『명현간찰(名賢簡札)』 34건 등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
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시문첩. 오도일(吳道一)[1645~1703]이 1686년(숙종 12)과 1694년(숙종 20) 두 차례에 걸쳐 주청부사로 청나라의 수도 연경(燕京)을 다녀올 때, 그와 교유하던 인사들이 지은 송별 시문을 엮은 시문첩이다. 1686년의 연행에는 54명, 1694년의 연행에는 44명이 시작(詩作)에 참여하...
-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계휘(季輝), 호는 추담(秋潭). 오경민(吳景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선공감역을 지낸 오희문(吳希文)이고, 아버지는 오윤해(吳允諧)이며, 어머니는 최형록(崔亨綠)의 딸이다. 경기도 송탄의 이충부락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9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34년(인조 12)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도사(都事) 조간(趙幹)의 딸이고, 아들은 오수채(吳遂采)이다. 오도일(吳道一)[1645~1703]은 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에게서 자랐다. 성강(星江) 조견소(趙見素)에게 글을 배웠으며, 어...
-
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회화가 문사들의 예술 장르로서 애호되었다. 시·서에 뛰어난 문사들은 자신들의 뜻과 흥취를 표현하거나 탈속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것을 기본적인 교양이자 고상한 풍류로 여겼다. 이와 같이 시·서와 더불어 문인 문화의 핵심을 이루었던 조선시대 회화는 특히 문사들에 의해 창작이념과 취향이 계도되면서 중세적 감상물로서의 성격을 형성하는 특징을...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신백(信伯), 호는 신곡(薪谷)이다. 할아버지는 교리 윤섬(尹暹), 아버지는 현감 윤형갑(尹衡甲)이다. 외조부는 황치경(黃致敬)이고, 부인은 박정원(朴鼎元)의 딸이다. 그의 친동생 윤집은 청나라 와의 화의를 강경하게 반대한 3학사의 한 사람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상소하여 척화를 주장하였다...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청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충신 윤섬과 그 손자 윤계의 정려문. 윤섬의 본관은 남원이고, 호는 과재(果齋)이다. 1583년(선조 16)에 문과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을 거쳤으며, 1587년(선조 20)에 조선 왕실의 세계(世系)가 명나라에서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은 종계변무(宗系辨誣) 사건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공을 세워 수기광국공신...
-
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산림의 학자들을 대거 천거하여 요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으나 훗날 그가 천거한 송시열과 정적이 되어 노소분당(老少分黨)이 이루어지면서 소론의 비조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하였던 명상(名相)으로 꼽힌다....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계행(啓行), 호는 송서(松西), 시호는 문간이다. 현감 이희선(李羲先)의 아들이다. 1822년(순조 2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직각·이조참의·이조참판·평안도관찰사·대사간·대사헌·한성판윤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849년 철종이 즉위하자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고종 때 영의정에 올랐고 1860...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백첨(伯瞻), 호는 석음와(惜陰窩). 호는 배우는 데 힘쓰고 시간을 아껴 매사에 부지런히 하라는 뜻으로 송시열이 지어주었다 한다. 고조부는 증직제학 병조정랑 이신충(李藎忠), 증조부는 증집의 정선군수 이영인(李榮仁), 조부는 증좌승지 이사익(李士益),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이후망(李堠望)이다. 송시열과 동향으로 송시열의 자손들과 같이...
-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이익기(李翊奇)의 아들이다.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교리로 출사하였다. 이듬해에는 병조참의에 올랐고, 1884년 사간원 대사간으로 있던 중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원조를 요청, 청군의 지원으로 개화당 정부를 타도하였다. 그 공...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중경(仲庚), 호는 북계(北溪)·우사(雩沙). 파주목사 이정악(李挺岳)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 동지중추부사 김광찬(金光燦)의 딸이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외증손이며, 외삼촌은 유명한 문곡공 김수항(金壽恒)이다. 아들 이의현(李宜顯)은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는데, 부자 정승으로 유명하였다. 특히 용인이씨 가계 중 조선...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중우(仲羽), 호는 일휴정(逸休亭). 관찰사 이지신(李之信)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승지(承旨)에 추증된 이할(李劼)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이며, 어머니는 윤홍유(尹弘裕)의 딸이다. 부인은 박호(朴濠)의 딸이다. 이숙(李䎘)[1626~1688]은 인조 대부터 효종, 현종, 숙종의 4대 35년간 활동...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경원(景元). 6판서 집안으로 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삼현(李參鉉)이다. 1867년(고종 4)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가 되었다. 1880년(고종 17) 성균관대사성에 등용된 뒤 이듬해 이조참의·사간원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883년(고종 20)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정사(正使) 민종묵(閔種黙)과 함께 청나라에 가서 흥선대원...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덕재(德哉), 호는 도곡(陶谷). 증조부는 찬성공 이후연(李後淵), 조부는 파주목사 이정악(李挺岳), 아버지는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이다. 어머니는 정경부인으로 군수 정창징(鄭昌徵)의 딸이고, 홍익한(洪翼漢)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서울 북부 진장방(鎭長坊) 소격동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21세 때 도승지로 있었던 아버지 이세백이 기사환국(己巳換...
-
조선 후기의 문신. 이재학은 조선 후기 영조 대에서 순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이다. 대사간으로 재임할 때는 “오늘날 허다한 하자와 폐단을 이루 거론할 수 없습니다만, 그 병든 근원을 찾으면 오로지 군신상하(君臣上下)가 실(實)이란 하나의 글자를 실행해나가지 않는 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라고 임금께 당대의 폐단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중(聖中)...
-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집(景集), 호는 완서(翫西). 이용규(李用奎)의 아들이다.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에서 출생하였다. 1876년(고종 13)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으며, 1880년 감찰(監察)로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이후 조병호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다. 1882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영선사 김윤식의 고선관으로, 또 사은겸진주사 조...
-
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천(敬天), 호는 국은(菊隱)이다. 이한응은 1892년 육영공원을 졸업하고 한성부주사와 관립영어학교 교관을 거쳐, 1901년 3월 영국·벨기에 양국주차공사관의 3등 참서관으로 런던에 부임했다. 1904년에는 서리공사로 승진하였는데, 당시 일본은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하고, 뒤이어 외국인 고문에 관...
-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성방(聖方), 호는 호재(扈齋). 아버지는 형조참판 임수적(任守迪)이다. 임정(任珽)[1694~1750]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했던 문신이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뒤 1728년 지평(持平)에 올랐으며, 부수찬(副修撰)·수찬(修撰)·정언(正言)·부정언(副正言)·교리(校理)·부교...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사수(士守). 정몽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정응선(鄭膺善)이다. 정준은 희릉참봉·건원릉참봉을 거쳐 제용감봉사·사재감직장·장흥고주부와 돈령부주부를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조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와서별제(瓦署別提)가 되었다. 이듬해 중국 청(淸)의 태종이 인조의 항복을 받고 이를 기념하는 삼전도비(三田渡碑)를 세우게...
-
1905년 을사조약을 계기로 경기도 용인 지역에 일어났던 의병 항쟁. 1904년 2월, 일본은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시켰으며, 5월 말에는 제1차 한일협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1905년 들어 일본은 청과의 봉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한국의 식민지화를 노골화시켜 11월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한국에 파견하여 을사조약을 체결하였다. 을사조약은 한국의 외교...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조중회는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선조인 생육신 조려(趙旅)의 기상을 이어받아 죽음을 불사하고 간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영조의 빈번한 사묘(私廟) 참례, 장헌세자(莊獻世子)를 죽게 한 처분 등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였다. 1781년부터 이듬해 죽을 때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 충렬서원의 제32대 원장을 지냈다. 본관은 함...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배출된 충신, 효자·효부 그리고 열부·열녀들. 충효열이란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녀자가 지조를 지켜 남편을 따라 순절하는 행실을 통칭한 것으로 이를 삼강행실이라고 하였으며 유교 이념의 기본 덕목이다. 충(忠)은 삼강행실의 첫 번째 덕목이다. 용인의 대표적 인물은 포은 정몽주이다. 그는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충의백(忠毅伯)으로서 사...
-
학일마을[學日里]은 앞으로 장엄하게 솟아있는 구봉산과 서편에는 쌍령산, 북쪽으로는 문수산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학일마을은 본래 마을에 학(鶴)과 백로 등이 서식하여 학일(鶴日)이라고 하였는데, 병자호란 때 삼학사(三學士) 중의 한 분인 추담(秋潭) 오달제(吳達濟) 선생이 태어난 후에 학일(學日)이라고 하였다. 18세기 중엽의 『양지현읍지』나 1789년 간행된...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계형(季亨), 호는 만오(晩悟), 초명은 용구(用九).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한후유(韓後裕)이다. 한용구(韓用龜)[1747~1828]는 영조 대부터 정조, 순조의 3대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1772년(영조 48) 황감제(黃柑製)에 장원 급제하였다. 1773년(영조 49)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
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희보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 오인유(吳仁裕)는 본래 중국 송나라 때 이름 높았던 대학사로, 984년(성종 3) 고려에 들어와 검교군기감을 역임하였고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여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고려 말 대호군을 지낸 오희보(吳希保)가 말년에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릉리·학일리 일대에 정...
-
1636년 1월 2일 경기도 용인에서 충청도 근왕군이 남한산성을 에워싼 청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벌인 전투. 1636년 12월 13일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조선 조정은 강화도-한성-남한산성을 중심으로 거점 방어를 하여 청군을 격퇴할 것을 구상하고, 이 거점들의 방어 태세를 정비하는 한편, 각도 첨사·병사에게 근왕(勤王)을 명령하였다. 그런 다음 비빈(妃嬪)·왕자·종실 및 백관(百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