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
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대술과 유대건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기계유씨(杞溪兪氏)의 시조는 신라 때 아찬 벼슬을 역임한 유삼재(兪三宰)이다. 그의 후손 유의신(兪義臣)이 신라 멸망 후 고려에 불복하자 고려 태조가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인 기계의 호장을 삼은 것을 연유로 하여 후손들이 기계를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그 후 기계유씨는 유의신의 종...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 김균(金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찰방 김성진(金聲振)이다. 처는 정응규(鄭應奎)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성균관에 있을 때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모하자 몇몇 유생들과 함께 이를 비판하는 복합상소를 올려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하옥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1627년 전주정시(...
-
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광교산 전투에 참여한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수부(秀夫). 할아버지는 전설사별좌(典設司別座) 김영(金瑛)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두남(金斗南)이며, 어머니는 도호부사 김희필(金希弼)의 딸이다. 1608년(선조 41)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황해도·경상도·함경도의 병영에 근무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인동부사가 되었고,...
-
순대는 함경도와 평안도처럼 추운 지방에서 즐기던 음식이다.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자면 영양식이 필요했고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맛을 낸 순대가 영양 보충식이었다. 요즘은 사계절 언제나 시장 골목부터 대형 유통점 어디에서나 쉽게 먹을 수 있다. 순대는 대표적인 서민층의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지역에 따라 만드는 방법과 맛이 달라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순대만큼 전국적으로 분포...
-
백암순대는 조선시대 이래 죽성(현 안성시 죽산면) 지역을 중심으로 만들어 먹던 음식으로, 죽성이 퇴조하면서 인근 고을인 용인시 백암면의 백암장을 통해 전통이 유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경기도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쯤 ‘풍성옥’을 운영하던 함경도 출신의 이억조(여, 1909~1996)가 백암장이 설 때 순대와 국밥을 만들어 팔던 것이 시초라고 전하기도 한다....
-
경기도 용인지역에 있는 길쭉한 자연석 혹은 일부를 손질하여 세워놓은 돌기둥. 돌을 세웠거나 서있다는 의미에서 선돌 이외에도 입석(立石, 笠石)·삿갓바위[笠岩]·입암(立岩)이라고 부르며 지역에 따라서는 구지바위·할머니탑·할아버지탑·수구막이·수살장군·돌장승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는 전사(戰士)라고도 한다. 큰돌문화[巨石文化]의 하나로 고인돌과...
-
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원지(源之), 호는 만사(晩沙)이다. 증조부는 심금(沈錦), 할아버지는 심종열(沈宗悅), 아버지는 심설(沈偰)이다. 외조부는 청원도정(靑原都正)이었던 이간(李侃)이고, 부인은 윤종지(尹宗之)의 딸이며, 그의 아들 심익현은 효종의 딸 숙명공주와 결혼해 효종과는 사돈관계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정시문과에 병과...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楸灘) 또는 토당(土塘). 사헌부 감찰을 지낸 오경민(吳景閔)의 손자이고, 선공감역 오희문(吳希文)의 아들이며, 부인은 이응화(李應華)의 딸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한 뒤 문음으로 영릉참봉(英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다시 봉선전참봉(奉先殿參奉)에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여욱(汝旭). 아버지는 이정준(李廷俊)이며, 어머니는 부평이씨(富平李氏)로 참봉 이희재(李熙載)의 딸이다. 이휘(李暉)[1655~1723]는 숙종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비변사낭관·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평안도절제사·금군장(禁軍將)·방어사를 지냈고, 해남현감 및 덕원·곡산·회령 등의 부사와 옥천군수·정주목사 등...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1번대가 부산진을 침범하였다. 조선 관군은 준비가 잘 된 왜군을 당해내기 어려웠고 왜군은 부산진을 침입한 지 보름 만에 서울까지 점령하였다. 급박한 상황에서 선조는 4월 30일 밤에 서울을 떠났고, 왜군의 1번대와 2번대가 각각 5월 2일...
-
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정운관(鄭云瓘)의 아들이다. 1357년(공민왕 6)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하여 1362년 예문관의 검열·수찬이 되었다. 이때 김득배(金得培)가 홍건적을 격파하여 서울을 수복하고서도 김용(金鏞...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조중회는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선조인 생육신 조려(趙旅)의 기상을 이어받아 죽음을 불사하고 간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영조의 빈번한 사묘(私廟) 참례, 장헌세자(莊獻世子)를 죽게 한 처분 등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였다. 1781년부터 이듬해 죽을 때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 충렬서원의 제32대 원장을 지냈다. 본관은 함...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청반(淸班). 증조부는 한성부윤 최사위(崔士威)이고, 할아버지는 최조(崔肇), 아버지는 관찰사 최선민(崔善敏)이다. 아들은 첨정 최결(崔潔)이며, 최옥호(崔玉浩)는 아우이다. 성종대의 문신으로, 1473년(성종 4)에 충청도도사를 지냈다. 1481년(성종 12)에 경차관이 되어 평안도와 황해도를 살폈다. 1483년(성종 14...
-
본관 영일(迎日)이며 자는 달가(達可)이고 호는 포은(圃隱)이다.정몽주 초상 초명은 몽란(夢蘭), 몽룡(夢龍)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으로 영천(永川)에서 출생하였다. 1357년(공민왕 6) 감시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예문검열(藝文檢閱)·수찬·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냈다. 1363년 동북면도지휘사 한방신(韓邦信)의 종사관으로 여진족(女眞族) 토벌에 참가하고...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 경희 대학교 혜정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함경도·경기도·강원도 지도. 1740년대 하동 정씨(河東鄭氏) 가문의 정상기(鄭尙驥)[1678~1752]가 우리나라의 대형 지도인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제작한 이후 아들 정항령(鄭恒齡)[1710~1770]과 역시 해주 정씨 가문의 정철조(鄭喆祚)[1730~1781] 등이 『동국지도』를 수정한 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