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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262
한자 大松里
영어음역 Daes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대송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승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2.25㎢
총인구(남, 여) 580명[남자 284명, 여자 296명]
가구수 269가구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대하의 ‘대’자와 송내의 ‘송’자를 따서 대송리(大松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금구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내리·대하리·신덕리 각 일부, 서도면 대복리 일부를 병합하여 대송리라 하고 김제군 하리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하리면을 봉남면으로 개칭함에 따라 김제군 봉남면 대송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대부분이 평야 지역으로, 금구천(金溝川)원평천(院坪川)으로 흘러든다.

[현황]

봉남면 소재지이다. 2009년 9월 현재 면적은 2.25㎢이며, 총 269가구에 580명[남자 284명, 여자 29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면적은 밭 0.16㎢, 논 1.39㎢이다. 주요 기관으로는 봉남면사무소, 치안 센터, 우체국, 보건지소, 봉남중학교가 있다.

자연마을로 접주(接舟)·남주·송내·신성 등이 있다. 접주는 송내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봉남면 소재지이다. 옛날 벽골제가 제구실을 다할 당시 황산은 섬이 될 정도로 물이 들어와 이곳까지 배가 드나든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무렵 일본 미쓰비시회사가 채금선을 들여와 봉남면 일대를 모조리 파헤치고 금을 캐 갔는데, 이때 배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던 접주가 채금선의 본거지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앞날을 내다보고 마을 이름을 지은 조상들의 슬기에 감탄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구성산(九城山)에서 바라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하고, 배에 짐을 많이 실으면 가라앉듯 큰 부자가 나도 그 영광이 얼마 못 가는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송내는 대송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1800년 무렵 형성되었다고 한다. 마을이 형성될 당시 몇 가구 안 되는 마을 주위에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소나무 안에 마을이 있는 것 같다 하여 송안멀이라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송내가 되었다.

대복은 원당 동쪽에 있는 마을로, 산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낮은 언덕 위에 원당·신성·대복 세 마을이 마치 한 마을처럼 동쪽을 향하여 반달 모양으로 보기 좋게 자리 잡고 있다. 높은 산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영락없이 소가 누워 있는 듯한 와우형인데, 대복마을이 끝나는 곳에 구수강[구수는 구유의 사투리]이라는 못이 있어 소가 배불리 먹어 농사가 잘 되고 복이 온다고 하여 대복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송내에서 대성초등학교 쪽으로 가다 보면 소금정이라는 능선이 있고, 여기서 다시 약 200m 더 가면 대성초등학교 뒤에 나지막한 가고개[歌고개]가 있다. 가고개 아래 대성초등학교 자리는 풍수학적으로 볼 때 북혈[鼓穴]에 해당하므로 북고개라고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큰 ‘대(大)’자, 북 ‘고(鼓)’자를 써서 대고라 하였다고 한다.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복을 많이 받으라는 뜻에서 대복으로 바꾸었다는 설도 있다.

원당은 대복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행정상으로는 대복과 함께 신성으로 부르고 있다. 원래 원님이 쉬어 가는 집이 있던 곳이어서 원당(院堂)이라 하였는데,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으뜸 ‘원(元)’자를 써 원당(元堂)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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