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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617
한자 金溝鄕校大成殿
영어의미역 Daeseongjeon Hall of Geumgu Hyanggyo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 152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나종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4월 1일연표보기 - 금구향교대성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금구향교대성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향교
양식 겹처마 맞배지붕
건립시기/일시 1390년|1405년연표보기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 152 지도보기
소유자 향교재단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있는 고려 후기 금구향교의 대성전.

[개설]

향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으로 공자나 그의 제자 그리고 역대 성현들의 가르침을 기리고 공부하던 곳이다. 조선시대는 각 군·현마다 향교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으며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변천]

금구향교(金溝鄕校)대성전의 창건 연대에 대하여는 각기 다른 설이 있다. 『김제·금구·만경향교지』[1996]와 금구향교 앞뜰에 전 전교 송방섭이 쓴 중수 비문에서는 1390년(공양왕 2)으로 적고 있으며, 『문화재지』[1990]와 『금구읍지』[1981] 및 전북대학교 박물관이 펴낸 『김제지방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1985]에서는 1405년(태종 5)으로 밝히고 있다.

원래의 위치는 금구동헌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후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됨에 따라 서혈산 아래에 중건하였으나 지세가 좋지 못하여 1675년(숙종 1)에 현 위치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뒤 몇 차례 중수되었다고 전하나 자세한 내력은 알려진 것이 없다. 1974년에 보수하였으며, 1976년에 단청을 다시 하였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기둥은 두리기둥이고, 주초는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 주초이다. 기단은 다듬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1단으로 쌓았다.

[현황]

금구향교대성전에는 공자(孔子)를 중심으로 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 그리고 송대(宋代)의 6현, 즉 주돈이(周敦頤)·정명도(程明道)·정이천(程伊川)·소강절(邵康節)·장횡거(張橫渠)·주희(朱熹)를 배향하고 있다. 동·서벽에는 우리나라의 18현 즉 동벽에는 설총(薛聰)·안향(安珦)·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김집(金集)·송준길(宋浚吉)을, 서벽에는 최치원(崔致遠)·정몽주(鄭夢周)·정여창(鄭汝昌)·이언적(李彦迪)·김인후(金麟厚)·성혼(成渾)·조헌(趙憲)·송시열(宋時烈)·박세채(朴世采) 등을 배향하고 있다.

금구향교대성전은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향교재단이 소유하고 있으며, 금구향교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금구향교대성전은 명륜당, 만화루, 동재, 서재와 함께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금구향교는 창건 연대가 빠르고, 계속해서 지방의 정신적 중심 역할을 해 왔다. 특히 근래까지 동절기와 하절기에는 일요학교를 열어서 전통과 예절 교육을 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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