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감자 농사의 성공으로 화양마을을 포함한 광활면으로 수많은 젊은 사람들이 이주하였다. 이들은 현지 주민들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정착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광활면에서 3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지금은 나이가 50~60대로 면과 마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임직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는 본래 있던 토백이들은 별로 없어요. 그...
이민자들에게 자녀는 미래다. 그래서 바다일도 나가고, 땅도 팔아서 자녀들을 교육시킨다. 가깝게는 김제로, 익산으로, 전주로 학교를 보내고, 멀리는 서울까지 유학을 보낸다. 1960년대에 광활면 주민 중 대학생이 192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광활이 지금은 광활하면 김제 가서도 부자 동네라고 그러는데, 예전에 우리 학교 다닐 때 여기 대학생만 192명이나 있었어요. 그니까 왜 그런...
현재 화양마을이 자리한 광활면은 면소재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마을이 5가구 1개 반을 구성하고 있다. 광활의 마을은 일제강점기 농지와 소작인 관리에 용이하도록 논 가운데 형성되었는데, 현재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화양1구’와 ‘광활’은 일제강점기 5답구로 불리며 1930년 80세대가 이민을 들어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동진농업주식회사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