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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020
한자 金堤市
영어음역 Gimje-s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종우

[정의]

전라북도 중앙부 서쪽에 있는 시.

[개설]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蘆嶺山脈)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으로 동진강(東津江)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으로 만경강(萬頃江)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이웃하고, 서쪽은 서해와 닿아 있다.

경위도상 북위 36°, 동경 127°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도시로 위도로는 북위 35° 40′~35° 55′, 경도로는 동경 126° 40′~127°에 걸쳐 있다. 극동은 금산면 금산리로 동경 126° 5′, 극서는 진봉면 심포리로 동경 126° 45′, 극남은 금산면 금성리로 북위 35° 38′, 극북은 청하면 동지산리로 북위 35° 52′이다.

[자연환경]

동부에 노령산맥 끝자락인 모악산(母岳山)을 중심으로 구성산(九城山)·국사봉(國師峰)·상두산(象頭山) 등 높이 500~700m 산지가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솟아 있고, 황산면 황산(凰山)과 서해 연안에 봉화산(烽火山)·진봉산(進鳳山) 등 100m 안팎의 산지가 솟아 있다.

이들 산지를 제외하면 시 전체가 50m 미만의 야트막한 언덕과 동진강(東津江)·원평천(院坪川)·만경강(萬頃江) 주변에 형성된 광대한 충적 평야 지대로 호남평야(湖南平野)의 중심이 된다. 능제저수지·대율저수지·백산저수지·석동제·웅제 등에서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북쪽 만경강과 남쪽 동진강 사이에 펼쳐진 김제만경평야를 안은 김제는 전체 면적의 절반이 논으로 우리나라 쌀의 40분의 1을 생산한다. 앞으로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되면 김제시는 산과 강, 들녘과 바다를 아우르는 곳으로서 단순한 농업 위주가 아니라 관광을 비롯한 새로운 산업이 일어나는 도시로 도약할 것으로 여겨진다.

[면적과 인구]

2009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544.99㎢로 전라북도 전체 면적 8,041.24㎢의 6.8%를 차지하고 있으며, 총 40,595가구에 94,770명[남자 47,288명, 여자 47,48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구역의 변천]

1. 선사시대

역사적으로 볼 때 김제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여 생활의 터전을 닦아 온 곳이다. 금산면 일대에서 발견된 남방식 고인돌을 비롯하여 관내 곳곳에서 긴 돌칼이나 유구석부 등이 발견되었고, 벽골제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 볍씨 자국이 찍힌 민무늬 토기 조각이 발견되어, 청동기시대부터 농경문화가 매우 발달한 우리나라 벼농사 시원지 중 한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2. 초기국가시대

삼한시대에는 마한 54개 부족국가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했던 벽비리국(辟卑離國)이 있었고, 백제시대에는 벽골군(碧骨郡)이었다. 벽비리나 벽골이라는 지명은 ‘벼의 고을’, ‘볏고을’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이는 일찍부터 벼농사의 중심지 구실을 했기 때문에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3. 삼국시대

백제시대에는 벽지산(辟支山)·피성(避城)이라고도 하였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660년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함락된 뒤 주류성[지금의 부안]을 중심으로 백제부흥운동을 펴던 부흥군이 662년 12월에 본거지를 피성으로 옮겼다가 두 달 뒤인 663년 2월 다시 주류성으로 되돌아갔다. 약 60일간 피성이 부흥군의 수도였던 셈이다.

4. 남북국시대

757년(경덕왕 16) 전국적으로 지명을 중국식 한자로 고치면서 벽골은 김제로 바뀌었다. 만경·금구 등의 이름도 이때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851년(문성왕 13) 해상의 영웅 장보고(張保皐)의 근거지인 청해진이 폐지되면서 청해진 주민들이 벽골군으로 이주하였다.

5. 고려시대

940년(태조 23) 부윤(富潤)·거야(巨野)로 이름이 바뀌었고, 중기 이후에는 만경현·김제현·금구현이 차례로 현령관(縣令官)으로서 독립 행정구역이 되었다.

6. 조선시대~일제강점기

1403년(태종 3) 김제현이 다시 김제군으로 승격하였고, 1620년(광해군 12) 만경현이 한때 김제군에 병합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만경현금구현이 군으로 승격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만경군금구군김제군에 병합하였다. 1931년 11월 1일 김제면김제읍으로 승격하였고, 1935년 쌍감면과 수류면을 황산면금구면으로 개칭하고, 하리면과 초처면을 봉남면으로 개칭하여 1읍 15면이 되었다.

7. 현대

1949년 광활면진봉면에서 분리하여 1읍 16면이 되었고, 1961년 10월 1일 면 자치제 폐지로 김제군 자치제가 실시되었다. 1989년 1월 1일 김제읍이 김제시로 승격하면서 김제시와 김제군으로 분리되었고,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되어 김제시가 신설되었다. 1998년 봉황동이 신풍동에, 서흥동요촌동에 통합되었다.

[교통과 관광]

김제시는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와 26.7㎞, 서울특별시와 266.7㎞ 떨어져 있다. 고속도로 2개, 국도 4개, 지방도 8개, 시도 47개 노선의 도로망을 갖추었고, 호남선 철도가 지나며 부용역·와룡역·김제역이 개설되어 있다.

관광지로는 모악산도립공원(母岳山道立公園)에 있는 금산사(金山寺)가 유명하다. 사적지로 벽골제(碧骨堤)가 있고, 해양 문화 체험지로 심포항이 있다. 이 밖에 삼불암(三佛庵)·망해사(望海寺)·귀신사(歸信寺)·문수사(文殊寺) 등의 사찰, 김제동헌(金堤東軒), 김제향교(金堤鄕校), 금구향교(金溝鄕校), 만경향교(萬頃鄕校), 용암서원(龍巖書院), 삼현서원(三賢書院), 백석서원(白石書院), 조선 숙종의 교지를 기록한 김제전교비(金堤傳敎碑) 등이 있다.

[교육 문화 시설]

초등학교 35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9개교, 대학교 2개교가 있으며, 공공 도서관 4개가 있다.

[산업]

농림 어업 46%, 제조업 15%, 기타 산업 39%로 1차 산업의 비중이 크다. 논 재배 면적은 240㎢이며, 미곡 생산량은 118,595㎏이다. 인구의 67%가 농업에 종사하며, 농가당 경지 면적은 18,000㎡이며, 이 가운데 20,000㎡ 이상의 농가가 18.1%로 경지 규모가 크다. 근래에 들어 황산농공단지·서흥농공단지·봉황농공단지·만경농공단지·월촌농공단지를 중심으로 제조업도 꾸준히 발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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