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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197
한자 父橋里
영어음역 Bugy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3.57㎢
총인구(남, 여) 387명[남자 204명, 여자 183명]
가구수 147가구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부교리의 으뜸가는 부교마을에서 따 온 이름이다. 부교마을은 백제시대에 이미 형성된 마을로, 고려 말 너무 가난하여 비골이라고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부교(父橋)로 고쳤다. 이웃 모산마을[母山마을]과 대비되는 이름이라고 여겨진다. 1789년 발간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뜰 ‘부(浮)’자와 다리 ‘교(橋)’자를 써서 부교(浮橋)라고 기록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수리 일부와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를 병합하여 부교리라 하고 김제군 용지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가 되었다.

[현황]

2009년 11월 현재 총 147가구에 387명[남자 204명, 여자 183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6가구가 빈집이다. 전체 면적은 3.57㎢로 논 1.28㎢, 밭 0.70㎢, 과수원 0.03㎢, 목장 0.05㎢, 대지 0.09㎢, 임야 0.96㎢이다.

자연마을로 부교·백자·자흥(子興) 등이 있는데 모두 가마터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백자마을과 인접한 자흥마을은 1920년경 위덕화라는 사람이 옹기를 굽기 위해 땔감으로 많이 쓰이는 소나무가 많은 이곳에 가마를 만들고 터를 잡으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1978년 연와 공장을 완공하여 현재 가동 중이다.

부교리와 인접한 용지면 용암리의 모산마을 역시 기와를 굽던 가마가 있어 와리(瓦里)라고 부르다가 모산[일명 엄마산] 밑에 있는 마을이어서 모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백자마을과 인접한 애통마을 사이에 골짜기가 있는데, 옛날에 기와를 구웠던 곳이어서 기와막골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백자마을을 비롯한 부교리 일대는 기와나 옹기를 굽기에 적합한 토양과 땔감인 소나무가 많다는 점, 그리고 완성된 그릇들을 내다 팔기에 좋은 시장인 김제나 전주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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