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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229
한자 東芝山里
영어음역 Dongji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총인구(남, 여) 845명[남자 432명, 여자 413명]
가구수 380가구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마을 앞산인 동지산(東芝山)에서 이름을 따서 동지산리(東芝山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만경군 북일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산리·궁동리·척산리·내실리·내토리·대신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지산리라 하고 김제군 청하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가 되었다.

[현황]

2009년 11월 30일 현재 총 380가구에 845명[남자 432명, 여자 41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마을로 척산(尺山)·내신(內新)·궁동(弓洞)·동지산·연봉(蓮峰)·동촌(東村)·시장(市場)·신창(新倉)·갈산(葛山) 등이 있다. 척산은 마을 뒤에 있는 산 모양이 마치 자[尺]처럼 길게 생긴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왜구의 약탈을 막기 위해 이곳에 성을 쌓았는데, 그 모양이 자처럼 길게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내신은 1920년경 유씨가 처음 터를 잡은 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지게 짐을 지고 가다 쉬어 가던 갈대밭 중간에 유씨가 주막을 열어 운영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일제강점기에 만경강(萬頃江) 제방을 쌓은 뒤 마을 이름을 제방안이라 하였다가 후에 내신이라고 했다는 설과, 갈대밭 안에 형성된 마을이므로 내신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궁동은 옛날 척산에 감찰 벼슬을 지내던 장씨가 운영하는 정미소가 있었는데, 찧은 쌀을 일본으로 운반하기 위해 많은 인부가 모여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광복 후에 척산에서 분리되었다. 마을 뒤에 있는 언덕이 활처럼 굽었으므로 활 ‘궁(弓)’자를 써서 궁동이라 하였다.

동지산은 1400년경 이씨가 처음 터를 잡은 뒤 형성된 마을로, 마을 앞산인 동지산에서 따 온 이름이다. 만경대교가 놓이기 전에 김제·군산·옥구를 오가는 동지산 나루터를 중심으로 주막과 시장이 형성되어, 장날이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상업의 중심지였다.

연봉은 100여 년 전 김해김씨 김석봉의 선조가 낙향하여 터를 잡으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의 형세가 연꽃 봉오리와 같아 유래된 이름이다. 동촌은 동지산 서쪽, 갈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일제강점기 초에 형성되었다. 원래는 연봉에 속하였는데, 1920년 일본인 중시가 신창에 농장을 만들면서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마을이 커지자 마을을 나누면서, 갈산 동쪽에 있다 하여 동촌이라 하였다.

시장은 8·15광복 뒤 이한익이 소금 장사를 하기 위해 처음 터를 잡으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초에 신창교회 자리에 일본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씨가 터를 잡자 점차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장이 생기면서 마을 이름도 시장이라 하였다. 예전에는 5일장이 섰다. 김제와 군산을 잇는 국도가 마을을 지난다.

신창은 1905년경 일본인 중시가 시장마을에 살면서 군산으로 가기 위해 나룻배를 이용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마을이다. 새로 생긴 나루터라는 뜻에서 새창이로 부르다가 신창으로 고쳤다. 가을이면 전국 최대의 망둑어 낚시터가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갈산은 조선 세조 때 왕권 다툼에 휘말려 고군산열도에 유배되었던 왕족의 후손이 터를 잡고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당시 갈산 포구는 서해와 접하여 있어 고군산열도로 왕래가 빈번하였다. 마을 뒷산에 수백 년 묵은 칡나무가 있어 칡매로 부르다가, 칡 ‘갈(葛)’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갈산이라 하였다.

유적지로는 동지산리 토성, 선사시대 주거지, 새창이 나루터[일명 신창진 나루터] 등이 있다. 동지산리 토성이 있는 산은 해발 고도 289m로, 척산(尺山)[일명 잣뫼] 또는 성산으로 부른다. 그 옆에 신창산이 있다. 선사시대 주거지는 1981년 국립중앙박물관 고고학연구실에서 발굴하였다. 철기시대 초기의 것으로 여겨지는 민무늬토기와 김해식 토기 등 20여 점의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새창이 나루터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만경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강탈해서 군산항으로 운반하기 위해 만경강 하구에 조성한 나루터이다. 현재 만경교[일명 새창이다리]가 놓여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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