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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232
한자 官上里
영어음역 Gwans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관상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총인구(남, 여) 453명[남자 235명, 여자 218명]
가구수 207가구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조선 중엽 전씨·송씨·오씨·조씨 등이 모여 살며 마을이 형성되었다. 참판·좌랑·정령·현감 등의 벼슬을 한 사람이 많이 살게 되자 관촌으로 부르다가, 관동(官東) 위에 있는 마을이므로 관상리(官上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김제군 마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상리·석동리·거산리·송방리 일부, 북면 송중리·송상리·송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관상리라 하고 김제군 청하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청하면 관상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대부분 평야 지역이며, 마을 가운데 당제라는 저수지가 있다.

[현황]

2009년 11월 30일 현재 총 207가구에 453명[남자 235명, 여자 21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마을로 관상·관신(官新)·관동·석동(石洞)·월송(月松)·농원(農園) 등이 있다. 관상은 조선 중엽 전씨·송씨·오씨·조씨 등이 모여 형성된 마을이다. 참판·좌랑·정령·현감 등의 벼슬을 한 사람이 많이 살게 되자 관촌으로 부르다가, 관동 위에 있는 마을이므로 관상이라 하였다. 수백 년 된 팽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서 있다.

관신은 조선 말엽 관상에 살던 조씨가 관상 북쪽에 터를 잡은 뒤, 오씨·김씨·이씨·전씨 등이 들어와 형성된 마을이다. 벼슬한 사람들이 새로 들어와 마을을 이루어서 유래된 이름이다. 석동은 조선 초기 피난 온 전주이씨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돌이 많아서 석골[石谷]이라 하였다가 광복 후에 석동으로 고쳤다.

관동은 관상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전씨와 송씨가 정착한 데 이어 이어 오씨·조씨·강씨 등 여러 성씨들이 들어와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처음에는 관율이라 하였다가 조선 말엽 벼슬한 사람들이 많이 살면서 마을 이름을 관동으로 고쳤다. 마을 당골에서 옛 기와가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이미 마을이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월송은 조선 말엽 난리를 피해 내려온 해주오씨 선비가 터를 잡으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우거진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마을의 모습이 달처럼 보이므로 마을 이름을 월송이라 하였다.

농원은 당제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이씨가 들어와 맨 처음 터를 잡았다. 광복 후 하나둘 사람이 모이면서 신촌으로 부르다가, 6·25전쟁 뒤 마을이 융성하자 농원으로 고쳤다. 대월(大月)은 관상 북쪽에 있는 마을로, 뒷동산에서 바라보면 마치 달이 뜨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점촌은 관상과 장산 경계에 있는 마을로, 옛날 옹기를 굽던 가마와 옹기점이 있어 유래된 이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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