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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281
한자 雙龍里
영어음역 Ssangy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승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2.04㎢
총인구(남, 여) 784명[남자 378명, 여자 406명]
가구수 364가구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계리와 용흥리 2개 마을의 ‘용(龍)’자를 따서 쌍용리(雙龍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금구군 수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계리와 용흥리 일부를 병합하여 쌍용리라 하고 김제군 수류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수류면이 금산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김제군 금산면 쌍용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동쪽으로 금평저수지가 있고, 남쪽으로 원평천(院坪川)이 흐른다. 서쪽으로는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현황]

2009년 9월 현재 면적은 2.04㎢이며, 총 364가구에 784명[남자 378명, 여자 40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면적은 밭 0.37㎢, 논 0.62㎢이다. 지방도 712호선이 동서로 뻗어 있고, 국도 1호선국도 21호선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주요 기관으로 금산면사무소·금산보건지소, 교육 기관으로 금산중학교·금산고등학교, 종교 시설로 원불교당·증산교당·쌍용사 등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부평(富坪)·학평·월평·회평 등이 있다. 부평원평 옆에 있는 마을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사금을 캔 곳을 메운 자리에 형성되었다. 사금을 많이 캐내어 부자가 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부평이라 하였다. 또는 사금을 캔 구덩이를 메운 자리에 집을 짓고 사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부평(浮坪)이라고 했는데,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부자 ‘부(富)’자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학평은 일제강점기에 사금을 캐내기 위해 파헤쳤던 모래와 자갈 위에 원평초등학교를 세우면서 학교 주위에 형성된 마을이다. 원래는 부평에 속했다가 마을이 커지자 분리하여, 학교 옆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학평이라 하였다.

월평은 회평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주변에 계수나무 아래 산다는 옥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것 같다는 옥토망월(玉兎望月) 형국의 명당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승배기쌍용리 한가운데 자리 잡은 마을로, 옛날 마을 입구에 장승이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회평은 용암과 회평을 합친 마을로, 언양김씨 김무곤의 5대 조부가 처음 정착한 뒤에 형성되었다. 조선 선조정여립(鄭汝立)이 지금의 쌍용사 터에 자리를 잡고 뒷산에서 무예를 익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이때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여겨진다.

일제강점기 사금 채취가 한창일 때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이 커져 지금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쌍용사 뒤쪽 노루목고개는 둘로 갈라져 있는데,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혈을 끊으려 했던 흔적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용암은 회평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정여립이 모반자로 몰리어 죽은 후에 청주한씨의 본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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