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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296
한자 玉浦里
영어음역 Okp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총인구(남, 여) 701명[남자 368명, 여자 333명]
가구수 320가구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에 속하는 법정리.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만경군 하이도면에 속했던 갯벌 지역으로, 간척하여 진봉면 고사리에 편입하였다. 1949년 진봉면에서 광활면을 분할하고 옥포리라 명명하여 김제군 광활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옥포리가 속한 광활면은 1924년 동진농조주식회사가 광활방조제를 만들어 조성한 간척지로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현황]

2009년 12월 31일 현재 총 320가구에 701명[남자 368명, 여자 33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옥포리광활면의 중심지로 광활면사무소, 광활초등학교, 우체국, 농산물간이집하장 등이 들어서 있다. 시농마을에는 일제강점기에 있던 농업시험장 자리에 광활면 단위농업협동조합 사무실과 동진농조주식회사 광활출장소 등이 들어서 있다.

자연마을로 회진(會進)·화양(華陽)1구·화양2구·회령(會寧)·광활(廣闊)·화신(華信)·시농(試農)·시흥(試興) 등이 있다. 회진은 1981년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회령에서 분리된 마을이다. 화양은 1930년 80가구가 이주해 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오답구(五沓區)로 불리다가 땅이 기름지다고 하여 화양으로 바꾸었다. 1981년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화양1구와 화양2구로 나누어졌고, 다시 화양1구에서 광활이, 화양2구에서 화신이 나누어졌다.

회령은 1930년 81가구가 이주해 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삼답구(三沓區)로 불리다가 1949년 행정구역 개편 때 회령으로 바꾸었다. 일본인이 경영하던 농장이 있었는데, 농장 지배인의 못마땅한 행동에 참지 못하고 시위를 벌이다가 주모자가 잡혀 수모를 당하자, 마을 주민들이 창고에 모여 일을 수습하기 위해 회의를 자주 열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광활은 일제강점기에 오답구, 육마을, 여섯가구뜸이라 하였다가 1981년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광활면 소재지가 있는 마을이므로 광활이라 하였다. 오답구는 일본인들이 편의에 따라 간척지를 9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붙인 이름이고, 육마을이나 여섯가구뜸은 마을에 여섯 가구가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일본인들이 주로 살았던 일본식 가옥인 터돋움집, 한 구역에 여섯 가구가 살아서 육마을이나 여섯가구뜸으로 불린 것이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된 가옥들이 겉모습만 바뀐 채 남아 있다.

화신은 1981년 화양2구에서 나누어진 마을로 ‘서로 믿고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시농은 1932년 62가구가 이주해 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육답구로 불리다가 1949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시농으로 고쳤다. 일제가 광활간척지의 수확량을 높이려고 농업시험장을 만들고 소금기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자 했는데, 이 시험장이 있던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흥은 시농의 인구가 증가하자 1981년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나누어진 마을로, ‘시농에서 나누어져 흥하는 마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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