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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전 공려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582
한자 古沙里傳貢礪址
영어의미역 Whetstone Site of Gosa-ri
이칭/별칭 고사리 전 공려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342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문이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숫돌 제작소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고려시대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342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에 있는 고려시대 숫돌 제작소 터.

[개설]

전통시대 백성들이 국가에 세금을 내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 즉 토지를 경작하면 내는 전세(田稅)와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역역(力役), 그리고 지역의 특산물을 바쳐야 하는 공납(貢納)으로 이루어졌다. 공려(貢礪)란 바로 국가에서 지역에 부과하였던 숫돌을 공납하는 것이며, 고사리 전 공려 터는 고려시대에 공납품이었던 숫돌을 제작하던 곳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변천]

고려시대 진봉면 고사리 지역에서는 매년 숫돌 6,000편을 다듬어 나라에 바쳐야 했는데, 여기에는 인력 동원과 막대한 재정이 소요됨으로써 백성들은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에 봉호당 강원기(姜元紀)가 자신의 제자로서 당시 전라감사로 와 있던 이지로(李芝老)에게 부탁하여 숫돌 제작소를 태인(泰仁)으로 옮기게 했다고 한다.

[위치]

고사리 전 공려 터만경강에 접해 있는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석소마을 북편 12.7m의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구릉의 주변으로는 평야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공려 터는 단독으로 형성된 이 구릉과 그 아래쪽에 있었다고 전한다.

[의의와 평가]

고사리 전 공려 터는 현재 흔적은 찾을 수 없으나, 마을 사람들에 의해 당시의 실상이 전해져 내려옴으로써 역사적 정황을 전해 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역사란 사료에 적힌 것만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서 부족한 부분들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승 자료를 통해서 역사의 공백을 메워 주는 것이라고 볼 때, 고사리 전 공려 터에 관한 전승은 곧 당시 이 지역의 실상을 어느 기록보다도 더 상세하게 전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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