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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611
한자 安衛將軍墓
영어의미역 Grave of General An W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조종리 산4-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종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건립시기/일시 조선 후기
관련인물 안위(安衛)
높이 1.4m
지름 7.3m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조종리 산4-5 지도보기
소유자 강복식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제102호
문화재 지정일 1999년 11월 19일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조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안위의 묘.

[개설]

안위(安衛)[1563~1644]는 1592년(선조 25)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이듬해 거제현령이 되었다. 1594년 임진왜란 중에 이순신이 지휘한 제2차 당포해전 때 전부장(前部將)으로 공을 세웠다. 1597년에는 부산의 왜군 화약고에 불을 질러 폭파하였으며, 이후 전라우수사를 거쳐 전라도병마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통제사 이순신의 지휘 아래 왜선 20여 척을 격파하여 선조에게서 『무경칠서(武經七書)』를 상으로 받았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무공신(宣武功臣)으로 뽑혔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장계에 의하여 널리 알려지고 1598년 정월에 통정(通政)에 오르고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에 제수되었다. 1599년에는 가선(嘉善)에 올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고 이듬해 1600년에는 전라병사(全羅兵使)로 제수(除授)되었다.

1602년에는 전라수사로 임명되었고, 1604년에는 가의(嘉義)에 올라 이듬해 1605년에는 충청병사(忠淸兵使)로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아니하였다. 1606년 경상수사(慶尙水使)가 되었다가 1608년에는 전라수사로서 수군을 통제하였다. 1612년에는 고향에 내려와 있었는데 정온(鄭蘊)의 간곡한 상소로 1619년 평안방어사(平安防禦使)로 임명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이 되자 다시 대장으로 등용하려 하였으나 반대파의 시론(時論)에 부딪쳐 향리에 돌아와 조용히 머물고 있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74세의 고령으로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따라가기 위해 북상하던 중 은진(恩津)에 머물고 있었으나 길이 막힌 상황이어서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마침내 강화(降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돌아와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1644년(인조 22년)에 향년 82세의 고령으로 별세하였다.

[위치]

안위 장군 묘는 김제시 백산면 조종리 대산마을 뒤편 야산에 있다.

[형태]

봉분의 직경은 7.3m, 높이는 1.4m, 반경 둘레는 23.2m로 타원형을 이루고, 주위에는 소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정면 중앙에 상석이 있다. 상석 전면에 장명등이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 장명등은 없고, 문인석만이 자리하고 있다.

[현황]

1999년 11월 19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02호로 지정되었으나, 봉분이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어 관리가 필요한 상태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명량 영화 명량 을보고 검색했사옵나이다.
  • 답변
  • 디지털김제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4.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