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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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溝鄕校大成殿 |
영어의미역 | Daeseongjeon Hall of Geumgu Hyanggyo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 152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나종우 |
성격 | 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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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390년|1405년![]() ![]()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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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 | 향교재단 |
문화재 지정번호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3호 |
문화재 지정일 | 1984년 4월 1일![]()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있는 고려 후기 금구향교의 대성전.
[개설]
향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으로 공자나 그의 제자 그리고 역대 성현들의 가르침을 기리고 공부하던 곳이다. 조선시대는 각 군·현마다 향교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으며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변천]
금구향교(金溝鄕校) 대성전의 창건 연대에 대하여는 각기 다른 설이 있다. 『김제·금구·만경향교지』[1996]와 금구향교 앞뜰에 전 전교 송방섭이 쓴 중수 비문에서는 1390년(공양왕 2)으로 적고 있으며, 『문화재지』[1990]와 『금구읍지』[1981] 및 전북대학교 박물관이 펴낸 『김제지방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1985]에서는 1405년(태종 5)으로 밝히고 있다.
원래의 위치는 금구동헌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후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됨에 따라 서혈산 아래에 중건하였으나 지세가 좋지 못하여 1675년(숙종 1)에 현 위치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뒤 몇 차례 중수되었다고 전하나 자세한 내력은 알려진 것이 없다. 1974년에 보수하였으며, 1976년에 단청을 다시 하였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기둥은 두리기둥이고, 주초는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 주초이다. 기단은 다듬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1단으로 쌓았다.
[현황]
금구향교 대성전에는 공자(孔子)를 중심으로 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 그리고 송대(宋代)의 6현, 즉 주돈이(周敦頤)·정명도(程明道)·정이천(程伊川)·소강절(邵康節)·장횡거(張橫渠)·주희(朱熹)를 배향하고 있다. 동·서벽에는 우리나라의 18현 즉 동벽에는 설총(薛聰)·안향(安珦)·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김집(金集)·송준길(宋浚吉)을, 서벽에는 최치원(崔致遠)·정몽주(鄭夢周)·정여창(鄭汝昌)·이언적(李彦迪)·김인후(金麟厚)·성혼(成渾)·조헌(趙憲)·송시열(宋時烈)·박세채(朴世采) 등을 배향하고 있다.
금구향교 대성전은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3호로 지정되었다. 향교재단이 소유하고 있으며, 금구향교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금구향교 대성전은 명륜당, 만화루, 동재, 서재와 함께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금구향교는 창건 연대가 빠르고, 계속해서 지방의 정신적 중심 역할을 해 왔다. 특히 근래까지 동절기와 하절기에는 일요학교를 열어서 전통과 예절 교육을 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