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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645
한자 金山寺大寂光殿
영어의미역 Daejeokgwangjeon Hall of Geumsan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모악15길 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서홍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전
양식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조선 후기
정면칸수 7칸
측면칸수 4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모악15길 1]지도보기
소유자 금산사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

[개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원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보신불(報身佛)인 아미타불과, 화신불(化身佛)인 석가모니불, 즉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함으로써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상징한다. 이 금산사 대적광전(金山寺大寂光殿)에도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아마타여래와 석가모니불을, 우측에 노사나불과 약사여래를 모셨다.

[위치]

금산사 대적광전금산사 경내의 중심 위치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좌우로 금산사 미륵전(金山寺彌勒殿)금산사 대장전(金山寺大藏殿)이 있다. 기단 앞쪽으로 금산사 육각다층석탑(金山寺六角多層石塔)금산사 노주(金山寺露柱)가 좌우에 서 있고, 멀리 정면에는 금산사 보제루(金山寺普濟樓)를 앞에 두고 있다.

[변천]

1597년(선조 31) 정유재란으로 소실되기 전에는 대웅대광명전이라 하였다가 1635년(인조 13) 재건된 후부터 대적광전이라 칭하였다. 1776년(영조 52)에 중수하였으며, 1926년에 보수를 하였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476호로 지정되었다가, 1986년 12월 6일 화재로 전소되어 보물 지정에서 해제되었다. 1990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형태]

금산사 대적광전금산사의 중심이 되는 불전이며 사찰 내의 단층 건물로는 가장 웅장한 정면 7칸, 측면 4칸의 겹처마 단층 팔작지붕이다. 축대 중간에 석계가 있고, 한층 높은 기단 위에 원주를 세웠는데, 정면 7칸에는 쌍합의 10개의 빗살문을 달았다.

그러나 출입하는 중앙칸 이외는 모두 하부에 머름을 대어 문 높이를 줄이고 있다. 측면은 4칸으로, 4칸 중 제1칸은 외짝 출입문을 달고, 나머지는 회벽을 치고 상부에 인방(引枋)을 가로질렀다. 주춧돌과 기둥은 각각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과 목재를 사용하였다. 공포는 다포식에 내외 2출목이다. 공간포는 한 개씩이나 중앙칸은 2개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각 문의 문살은 빗살문이다.

법당에는 마루를 깔고, 측면 제3기둥에 연하여 길쭉한 불단을 만들었다. 임진왜란 때 대웅전, 대광명전, 극락전, 약사전 등이 불타자 수문대사가 1635년(인조 13) 이들을 합쳐서 28칸의 대적광전을 세워 5여래 6보살을 안치하였다. 법당 내부에 2단으로 불단을 쌓고, 그 상단에 5구의 소조여래좌상과 6구의 소조보살입상을 봉안하였다.

불단 서편으로부터 아미타여래·석가모니불·비로자나불·노사나불·약사여래의 순으로 좌상을 배열하고, 보처불로는 아미타여래 좌우에 관음보살·대세지보살을 모셨으며, 비로자나불 좌우에는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셨고, 약사여래 좌우에는 일광보살·월광보살을 모셔 6구의 입상을 배치하였다. 이들 불상 앞에는 각기 다른 형상의 조그마한 목조나한상이 4~5줄로 늘어서 있는데 그 수는 500구에 달한다.

본래 비로자나불과 석가여래의 천장에는 용을 조각한 닫집을 매달았으나, 지금은 석가여래의 정상에만 닫집이 남아 있다. 대들보는 자연목과 거칠게 다듬은 목재를 사용하고 좌우 측면에는 각각 3개씩의 충량(衝樑)을 걸었다. 천장은 대들보 바로 위에는 우물천장을 했으며, 불단 위쪽은 한층 높게 가설하였다.

[의의와 평가]

금산사 대적광전은 화재로 소실되기 이전에는 보물로 지정될 만큼 귀중한 문화재였다. 비록 현재의 건축이 문화재는 아니지만 대웅전, 대광명전, 극락전, 약사전 등의 통합 전각으로 그 규모와 불상의 배치 등은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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