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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김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692
한자 萬頃金氏
영어의미역 Mangyeong Gi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집필자 김병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시기/ 연도 1226년경연표보기
성씨시조 김희제
입향시조 김희제

[정의]

김희제를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연원]

만경김씨(萬頃金氏)는 신라 김알지의 후예로 김희제(金希磾)가 시조이자 입향조이다. 김희제는 충청도안찰사(忠淸道按察使)를 거쳐 장군이 되었는데, 1221년(고종 8) 의주분도장군(義州分道將軍)으로 있을 때 우가하(于哥下)가 침입하자 이를 격퇴했다. 또 1226년 서북병마사(西北兵馬使)로 있을 때 의주·정주 지방에 쳐들어온 우가하의 군대를 물리치고 압록강을 건너 석성까지 추격하여 항복을 받았다.

[입향경위]

시조 김희제만경현의 군산도(群山島)에 살다가 상선(商船)을 따라 개성으로 가서 살면서 관직을 개성으로 했다. 김희제의 후손들이 선대의 세거지였던 만경[현재의 김제시 만경읍]을 본관으로 삼았다.

[현황]

1930년 국세조사 통계에 의하면 후손들이 평안남도 평원군 공덕면 병공리에 40가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金諴(言+咸) 字德元 京兆金氏 其先 道康郡人
大唐故金氏夫人墓銘은 중국 당나라에 살았던 新羅人 金氏 婦人의 墓誌銘
774년(혜공왕 10년, 당(唐)  대력(大曆) 9년) 新羅人 金日用 묘지명 金氏婦人의 父親으로 太僕卿을 歷任했으며 죽은 뒤에는 지금의 山東 地方을 다스린 地方官인 연주도독에 追贈된 新羅人은 三國史記 等誌에 여러번 이름을 드러내는
2019.08.31
김** 金思蘭은 본래 新羅 王族으로서 唐에 使臣으로 갔다가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가 新羅 聖德王 32년(733) 7월에는 渤海가 登州를 侵略할 때는 太僕員外卿으로 本國 新羅에 使臣으로 派遣되어 新羅의 渤海征伐軍을 徵發하는 일을 했다. 2019.08.31
김** 827년부터 8년간 張保皐는 在唐 新羅人 自治機構인 新羅所와 新羅坊의 行政 責任者. 新羅所 = 新羅人이 唐나라에 設置한 自治的 行政機關, 新羅坊에 居住하는 新羅人을 管理. 906년에 唐의 策命使로서 歸國한 金文蔚은 工部員外郞 沂王府諮議參軍이었고, 또한 847년 윤3월에 등주 유산포에서 바다를 건너 新羅로 온 副使 金簡中은 東宮 所屬의 太子通事舍人. 2019.08.31
김** 金希磾는 群山(全羅北道 群山市 沃島面 仙遊島里) 사람이었으나, 祖上이 商船을 따라 開城에 定着하게 됨으로써 籍을 開城(개성인으로도 불렸다)으로(金希磾本群山島人其先隨商舶到開城留居遂以爲籍) 하였다. 2019.08.31
김** 金希䃅의 後孫들이 先代의 世居地였던 萬頃[현재의 김제시 만경읍]을 本貫으로 삼았다.
배에서 주연지, 아들 등과 함께 바다에 투신하여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일설에는 바다에 던져지는 해침을 받았다고 한다.
2019.08.31
김** 新羅神武王次子 英光-震禹-恒吉-殿邦-錫符-誠-大齡-進淀-仁康-順韋-正忠-彦志-益球-暹麗-希䃅 萬頃金氏始祖金希䃅(1181~2-1227)-金弘己-00-00-00-00-00-00-00-00- 金永賢-金聲振-金聲鍵-金世弼-
統計廳의 人口調査에 依하면 萬頃金氏는
930年度 후손들이 평남 평원군 공덕면 병공리에 40호
2000년에는 총 3가구 13명
2019.08.31
김** 長男은 文林郞,衛尉主簿同正 金伸沆(忠州崔時允의 壻),
次男은 國學學諭 金大齡.
20세 明經科 文科及第. 將作注簿,順州首領,大府注簿,尙書都事,監察御史‧西京分臺‧刑部員外郞,東京副留守,秘書丞,兵部郎中三司判官,衛尉少卿知刑部事,秘書少監御書檢討官知戶部事,
2019.02.27
김** 金諴 1076년(文宗 30)∼1147년(毅宗1:72세). 高麗中期 文臣. 字 德元.
本貫은 道康(開城留居以爲籍), 出身地는 全羅南道 康津郡. 墓는 現 京畿道 長湍郡 (松林縣 馬山) 서쪽 기슭,
祖父 殿邦 檢校太子大傅,
父親 金錫符 贈檢校太子大師,
母親 尙書右僕射 海州吳頲의 딸(兵馬元帥 吳延寵 누나 ). 婦人 尙乘奉御 盧格의 딸.
2019.02.27
김** 김희제(金希磾)
?-1227(高麗 高宗 14년) 高麗後期의 官人, 沃溝郡 沃島面 古群山 出身,
高麗高宗때 주로 外交와 軍事에 活躍한 사람으로 智慧와 勇猛이 있고 書史에 通하였다. 館伴使 金希磾1221년(고종 8)에서 대략 1222년까지 이르는 시기로 蒙古 使臣 接待 役割
2019.02.27
김** 고려 문하시중 두경승 장군 현창사업 추진하려면 김희제 장군 함께
高麗史列傳 金希磾

김희제(?~1227) : 김희제(金希磾)는 대몽항쟁기에 많은 공적을 세워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서북면병마부사(西北面兵馬副使) 등을 거쳐 전라도 순문사(巡問使)에 이른 무신관료이다,
2019.02.25
김** 동문선 제 6권 칠언고시서
過淸虜鎭 金希磾
장군은 도끼를 짚고도 부끄러움을 씻지 못했거니 장차 무슨 면목으로 조정에 조회하랴 한 번 푸른 뱀(칼)을 휘둘러 마산을 가리키매 오랑캐의 군사 세력은 모두 거꾸러지려 하였다 호분(용사(勇士))이 날고 뛰어 다섯 강을 건너매 성곽은 모두 타서 잿가루가 되었다
2019.02.24
김** 萬頃金氏始祖 金希䃅(1181~2-1227) 金希磾의 아들 3兄弟도 바다에 던져 죽였다. 一說에는 바다에 던져지는 海浸을 받았다고 한다,
후손들이 선대의 세거지였던 만경을 본관으로 했다.
2019.02.24
김** 金希磾 : "本群山島人 開城留居以爲籍" (高麗史 列傳.)
*金希磾는 萬頃金氏 시조로 선조가 商船을 따라 開城에 가 살면서 부터 籍을 開城으로 하였다.
그는 1227년(高宗14)에 全羅道都巡問使로 있을 때 崔瑀가 해치려하자 바다에 몸을 던져 自殺하였다. 후손들은 先代의 전 世居地인 만경(金堤屬面)을 本貫으로 하였다. (高麗史, 高麗史節要, 萬頃金氏譜)
2019.02.24
김** 金聲振 (1613 癸丑生-1644년) 部將 父 金永賢 司果
[武科] 仁祖 15년(1637) 丁丑 別試 丙科 弟 : 金明振
金世弼(1648년通德郞)-父 金聲鍵(納粟嘉善大夫)
[武科] 肅宗 4년(1678) 戊午 增廣試 丙科
2019.02.23
김** 眞表律師 718년(또는 734년) 全羅道 萬頃縣에서 태어났다. 父는 眞乃末, 母는 井吉寶娘
고종 8년(1221)김희제(金希䃅: 1227년 )
監牧直,散員,忠淸道按察使,將軍淸白吏,義州分道將軍,西北面兵馬副使,全羅道巡問使,
군산도 : 문종 28년(1074) 이후 고려와 송나라 양국 사이의 해상 교통로로 이용되었던 군산도(群山島 : 지금의 전라북도 군산시)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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