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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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悅南宮氏 |
영어의미역 | Hamyeol Namgu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
집필자 | 김병학 |
세거지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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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
입향시기/ 연도 | 1669년경![]() |
성씨시조 | 남궁원청(南宮元淸) |
입향시조 | 남궁제(南宮齊) |
남궁원청을 시조로 하고 남궁제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 대장군을 지낸 남궁원청(南宮元淸)이 감물아현백(甘勿阿縣伯)[지금의 익산시 함열읍]에 봉해진 뒤, 후손들이 함열을 관향으로 삼았다.
시조의 21세손 남궁제(南宮齊)[1626~?]가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파주를 떠나 김제에 정착하면서 후손들이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남궁제의 휘는 제(齊), 호는 동강(東岡)으로 사헌부남대지평을 지냈다.
남궁제의 후손들이 만경읍에 세거하고 있으나 씨족들이 많이 사는 집성촌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주요 인물로 남궁제의 동생으로 봉화현감을 지낸 남궁초(南宮礎)[1629~?], 남궁제의 1세손으로 통덕랑을 지낸 남궁홍[1646~?], 남궁제의 3세손으로 행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行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를 지낸 남궁민(南宮旻)[1715~?], 남궁제의 5세손으로 통덕랑을 지낸 남궁백(南宮栢)[1774~?] 등이 있다.
이 밖에 남궁제의 7세손으로 동몽교관을 지낸 남궁전(南宮饘)[1819~?], 남궁제의 7세손으로 호조참판을 지낸 남궁협(南宮鋏)[1828~?], 남궁제의 8세손으로 중추원의관을 지낸 남궁필(南宮滭)[1840~], 남궁제의 10세손으로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교수, 학교법인 만경학원 이사장, 학교법인 옥산학원 이사장을 지낸 남궁희(南宮熙) 등이 있다.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에 반구당 유지화(柳志和)와 남궁제를 배향한 남산서원(南山書院)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