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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배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717
한자 星州裵氏集姓村
영어의미역 Seongju Bae Clan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마산리지도보기
집필자 김승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마산리 마전마을에 있는 성주 배씨 집성촌.

[개설]

성주배씨(星州裵氏)성산배씨(星山裵氏)라고도 하며, 고려 때 삼중대광으로 벽상공신에 오른 배위준(裵位俊)을 시조로 한다. 성산(星山)은 오늘날의 경상북도 성주(星州) 지역이다. 배위준의 현손 배인경(裴仁敬)이 충선왕 때 추밀원사(樞密院使)를 지낸 뒤 흥안[성산]부원군에 봉해짐에 따라 후손들이 성산을 관향으로 삼았다.

[형성 및 변천]

성주배씨는 배위준을 시조로 하고 시조의 24세손 배극렴(裵克廉)[1325~1392]을 입향조로 하는 김제시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배극렴의 자는 양가(量可), 호는 필암(筆庵)·주금당(晝錦堂),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아버지는 위위시소윤(衛尉寺少尹)을 지낸 배현보(裵玄甫)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길에 올라 진주목사·상주목사·계림윤(鷄林尹)·화령윤(和寧尹) 등을 지냈다.

1376년(우왕 2) 진주도원수로서 진주로 쳐들어온 왜구를 반성현(班城縣)에서 물리쳤고, 이듬해 경상도도순문사로서 왜구를 물리치면서 합포에 성을 쌓았으며, 1378년 경상도도원수가 되어 또다시 왜구를 대파하였다. 1379년 왜구 기병 700명과 보병 2,000여 명이 진주로 쳐들어오자 양백연(梁伯淵)·우인렬(禹仁烈)·한방언(韓邦彦) 등과 더불어 싸워 크게 이겼다.

그 뒤 울주·사주·청도 등에서 왜구를 막는 데 큰 공을 세웠고, 1380년(우왕 6)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다. 1388년(우왕 14) 최영(崔瑩)이 요동 정벌을 강행할 때 우군도통수 이성계 휘하에서 위화도 회군에 참여하여 구세력을 제거하였고, 이듬해 판개성부사를 거쳐 문하찬성사에 올랐다. 1390년(공양왕 2) 평리(評理)가 되어 회군공신으로 추록되었고 양광도찰리사가 되었다.

1391년 정월 이성계가 삼군도총제부를 설치하자 중군총제사로 임명되었고, 1392년 7월 문하우시중으로서 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과 함께 공양왕 비인 정비(定妃)에게 “왕은 정사에 어둡고 덕이 없어 임금으로 삼을 수 없다.” 하고, 왕비의 교(敎)를 받드는 형식으로 공양왕을 폐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조선 건국 후 개국공신 일등으로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졌으며, 문하좌시중이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김제시 백구면 마산리 마전마을에 세거하여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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