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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안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719
한자 耽津安氏集姓村
영어의미역 Tamjin An Clan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평고마을지도보기
집필자 김승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에 있는 탐진안씨 동성마을.

[개설]

탐진안씨(耽津安氏)의 시조는 안원린(安元璘)으로 본명은 안원륜(安元崙)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정당문학(政堂文學)·검교중추원사(檢校中樞院事)를 지내고 탐진군(耽津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탐진을 관향으로 삼았다.

[형성 및 변천]

탐진안씨는 안원린을 시조로 하고 안우(安祐)·안지(安止)의 후손들을 입향조로 하는 김제시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안우[?~1362]는 고려 말기의 무신으로 탐진최씨 시조 안원린의 아들이다. 홍건적 격퇴에 공헌하였으나 재상 김용(金鏞)에게 복주(福州)[지금의 안동]에서 살해되었다. 이 일로 인해 후손들은 동음현[평고현]에 낙향하여 지금의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평고마을에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6세손 안지[1377~1464]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14년(태종 14) 친시(親試)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박사가 되고, 1416년 중시에 급제하여 예문관수찬·예문관제학 등을 지냈다. 1445년(세종 27) 공조참판으로서 권제(權踶)·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어 바쳤고, 이듬해 호조참판으로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집현전부제학·이조참판을 거쳐 공조판서에 올랐으나 사필(史筆)의 일로 고신(告身)이 환수되었다.

1455년(세조 1) 세조가 즉위한 뒤 지중추원사·영중추부사에 올랐다. 그때 그의 나이 80세가 넘었는데도 강건하므로 세조가 기뻐하여 시를 지어 내렸다. 안지는 시를 지을 때 속된 말을 섞어서 빨리 잘 짓고, 짧은 서간에도 거의 시로 말뜻을 이끌어 갔다. 또한 해서를 잘 써서 일찍이 세종의 명으로 태종을 위하여 『금자법화경(金字法華經)』을 베껴 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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