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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735
한자 東萊鄭氏集姓村
영어의미역 Dongrae Jeong Clan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
집필자 김승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에 있는 동래 정씨 집성촌.

[개설]

동래정씨(東萊鄭氏)는 신라 유리왕 때 정씨 성을 하사받은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고 있으나 이후 계대가 전해지지 않아 후손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한다. 조선시대에 전주이씨[22명], 안동김씨[19명] 다음으로 정승을 17명이나 배출하였고 대제학 3명, 대과 급제자 198명을 낳은 대표적인 명문가이다.

[형성 및 변천]

고려 때 양헌(良獻) 정인(鄭絪)이 낙향하여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김제시 장화동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정인은 1356년(공민왕 5) 강릉 교주도도지휘사로 동해안을 빈번히 침입하는 왜구와 함경도 국경에 출몰하는 여진족을 물리쳤고, 나이가 들자 벼슬을 그만두고 벽골(碧骨)[지금의 김제시]로 낙향하였다.

정인의 증손 정곤(鄭坤)세종 때 홍문관직제학·성균관대사성을 지냈다. 증손 정수홍(鄭守弘)은 청풍군수·안산군수·금산군수·나주목사를 거쳐 세종 때에는 사헌부대사헌·이조참판을 지냈다. 7세손 정언신(鄭彦信)은 사헌부대사헌·홍문관부제학·경기도관찰사를 지낸 인물로, 여진족이 쳐들어오자 우참찬겸함경도순찰사(右參贊兼咸鏡道巡察使)로 이순신(李舜臣)·신립(申砬)·김시민(金時敏)·이억기(李億棋) 등 뛰어난 무관들을 거느리고 적을 격퇴하였다.

18세손 정여립(鄭汝立)퇴계(退溪) 문인으로 1589년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고 참위설을 퍼뜨려 모반을 꾀하려다 진안 죽도에서 죽었다. 17세손 정한조(鄭漢朝)는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고종의 신임을 받았으며, 19세손 정현섭(鄭賢燮)정병모(鄭秉謨)는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현황]

김제시 장화동 전장마을과 후장마을동래정씨 집성촌이 있다. 관련 유적으로 김제시 흥사동 승방산(承芳山) 아래에 승방서원(承芳書院)이 있다. 1923년 세운 서원으로, 주벽에 정인을 두고 최철(崔哲)·정수홍·정곤·정임(鄭任)·박문(朴雯) 등을 배향하였다. 김제시 장화동에 있는 화동서원(華東書院)은 1924년에 세운 것으로, 외암 정윤교(鄭允喬)·송고 정윤준(鄭允俊)·경재 정윤검(鄭允儉)·정인현(鄭寅鉉)·송환기(宋煥箕) 등을 배향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11.18 [개설]수정 <변경 전> 정지원(鄭之遠)을 일세조로 한다. <변경 후>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한다.
이용자 의견
정** [개설] 두째줄의 {1세조}를 [1세]로 수정하여 주십시오. 조를 붙이면 관계설명시 쓰는 말입니다.
1세조는 아버지라는 의미가 되어 잘못된 표현입니다.
  • 답변
  • 디지털김제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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