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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806
한자 趙遂良
영어음역 Jo Suy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창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
성별
생년 미상
몰년 1453년(단종 1)연표보기
본관 김제
대표관직 평안도관찰사

[정의]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양주(楊州). 아버지는 좌참찬 조계생(趙啓生)이고, 부인은 이적(李迹)의 딸이다.

[활동사항]

조수량(趙遂良)은 1420년(세종 2),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고, 1429년(세종 11) 예조좌랑으로서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경상우도에 파견되었다. 그 뒤 장령·집의·강원도관찰사·형조참판·대사헌·충청도관찰사·병조참판·경창부윤(慶昌府尹)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에 평안도관찰사로 있었으나, 수양대군(首陽大君) 일파에게 체포되어 고성으로 유배 갔다가 살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에 후손들이 단(壇)을 모시고 단제(壇祭)를 지내고 있으며, 강원도 영월의 장릉(莊陵)[단종릉] 아래에 있는 조사단(朝仕壇)에도 다른 충신들과 함께 배향되어 매년 영월군수가 집전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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