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두경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854
한자 杜慶文
영어음역 Du Gyeongmu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채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성별
본관 두릉(杜陵)
대표관직 판관

[정의]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개설]

인조반정에 참여한 이괄(李适)은 자신이 2등에 녹훈되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한 뒤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저 원임대신 윤방(尹昉)김상용(金尙容)에게 명하여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강씨, 원손(元孫), 둘째 아들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인도하여 강화도로 병화를 피하도록 하였다. 인조도 그날 밤 도성을 빠져나와 강화도로 향하려 하였으나 가는 길이 차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가계]

본관은 두릉(杜陵).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두경승(杜景升)의 후손으로, 오위도총부도총관을 역임한 두양필(杜良弼)의 조카이다. 임진왜란 당시 옹치전투에서 공을 세운 두기문(杜起文)이 아우이다.

[활동사항]

두경문(杜慶文)은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한 뒤 판관(判官)을 지냈다.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피난길에 나섰다는 소식을 접하고 통곡해 마지않았으며, 아우인 병사(兵使) 두기문·당숙인 두양필과 함께 왕의 남한산성 피난길을 호종하였다. 남한산성에서는 적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

[상훈과 추모]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훈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진무원종공신은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을 말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