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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861
한자 朴熙中
영어음역 Bak Huijung
이칭/별칭 희종(熙宗),자인(子仁),위남(葦南)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채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364년연표보기
몰년 1446년연표보기
본관 진원
대표관직 예문관직제학

[정의]

조선 전기 김제 벽골제를 수축한 문신.

[가계]

본관은 진원(珍原). 초명은 희종(熙宗), 자는 자인(子仁), 호는 위남(葦南).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박온(朴溫)이다.

[활동사항]

박희중(朴熙中)은 생원으로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405년 이조좌랑이 되었다. 1406년(태종 6) 군자감승(軍資監丞)으로 전라도경차관(全羅道敬差官)에 임명되었다. 이어 세자부좌정자(世子傅左正字)가 되었다가 이듬해 이조정랑이 되고, 왕으로부터 사명(賜名)의 은전을 입었다. 1410년 점마별감(點馬別監)을 맡아서 헌마(獻馬) 업무를 관장하였으며, 1414년에는 하륜(河崙)이 발의한 통진고양포(通津高楊浦) 제방 수축에 직예문관(直禮文館)으로 참여하였으나 폐단이 일어 일시 파직되었다가 곧 복관되었다.

1415년 다시 전라도경차관으로 임명되어 전라도관찰사 박습(朴習) 등과 함께 김제 벽골제(碧骨堤)를 수축하였다. 1416년 동궁서연관(東宮書筵官)·예문관지제교(禮文館知製敎)겸춘추관기주관(兼春秋館記注官)의 화요직(華要職)을 역임하였으며, 1421년에는 영암군수를 지냈다. 1422년(세종 4) 회례사(回禮使)로 일본에 가서 금구(禁寇) 포로 쇄환의 실효를 거두었으며, 이 공으로 예문관직제학에 올랐다. 1426년 남원부사로 재직하다 결장(決杖)되고 파직을 당하였다.

[저술 및 작품]

시문집으로 4권 1책의 『위남문집(葦南文集)』이 있다. 1920년 후손 박남현(朴南鉉)·박우현(朴祐鉉)·박태규(朴泰奎)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조윤희(趙胤熙)·윤영만(尹永萬)·남현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후손 박종호(朴宗鎬)·박태규의 발문이 있다. 시에는 1422년 회례사로 일본에 가서 지은 「이회례사재일본음(以回禮使在日本吟)」과 권근(權近)의 수연시인 「양촌권선생근수연운(陽村權先生近壽宴韻)」, 「초병팔첩(草屛八帖)」이 있다. 또한 박희중은 『해동필원(海東筆苑)』에 이름이 오른 명필로서, 영의정에 증직된 하륜의 아버지 하윤린(河允潾)의 신도비음지(神道碑陰誌)를 남겼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동* 우리조상님이다.박첨조상님도있다 201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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