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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941
영어음역 Jo Seongma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승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주화운동가|사회운동가
출신지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
성별
생년 1964년 12월연표보기
몰년 1988년 5월 15일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

[개설]

조성만은 1964년 12월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 모산마을에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던 아버지 조찬배와 어머니 김복성 사이에서 4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조성만은 용암초등학교를 마치고 전주 서중학교와 해성고등학교를 거쳐 1984년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화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는 민주화와 한반도의 통일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광주 5·18 민중 항쟁 8주기를 맞아 민가협 등 재야민주단체 주최로 열린 ‘양심수 전원 석방 및 수배 해제 촉구 결의대회’의 열기가 뜨겁던 1988년 5월 15일 오후 3시 40분경이었다.

서울 명동성당 교육관 4층 옥상에서 “양심수 가둬 놓고 민주화가 웬 말이냐!”, “공동 올림픽 개최하여 평화 통일 앞당기자!” 등의 목소리가 핸드마이크를 타고 약 1분간 흘러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흰색 한복을 입은 조성만이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자신의 배에 꽂고 5장의 유서를 뿌리며 몸을 날렸다. 이내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조성만은 즉시 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날 저녁 7시, 24년이란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5월 19일 낮 서울시청 앞에서 치러진 조성만의 장례식 노제에는 30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운집하였다. 당시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이룬 야당의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김영삼 민주당 총재도 참가하였다. 조성만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닌 전라북도 전주시의 도심을 지날 때와 광주광역시에 있는 망월동 묘역으로 떠나기 전 광주도청 앞에서 노제를 지낼 때도 수만 명의 시민들이 장례 행렬을 뒤따랐다.

[상훈과 추모]

1999년 8월 모교인 해성고등학교에 조성만의 정신을 계승하는 추모비가 세워졌고. 죽은 지 13년 만인 2001년 민주화운동명예회복위원회에서 민주화 운동 관련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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