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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184
한자 芝陰書院
영어음역 Jieum Seowo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 46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용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원
양식 맞배지붕|함석지붕
건립시기/일시 1634년(인조 12)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사당]|4칸[강당]
측면칸수 1칸[사당]|2칸[강당]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 469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지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지음서원충정공 이귀(李貴)[1557~1633]·나협[1546~1632]·나수눌(羅守訥)·고봉익(高鳳翼)·나처대(羅處大)[1714~1791]·나희후(羅喜厚) 등의 위패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이귀의 호는 묵재(墨齋), 자는 옥여(玉汝),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이이(李珥)[1536~1584]와 성혼(成渾)[1535~1598]에게 수학하였으며,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599년(선조 32)~1602년(선조 35) 김제군수를 역임하였고, 1603년(선조 36)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으로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에 봉해졌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나협의 호는 주은(酒隱),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경기도에서 태어나 이이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575년(선조 8)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15년(광해군 7)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되자 경기도 이천으로 병거(屛居)하였으며, 1618년(광해군 10) 남원으로 옮겼다가 다시 1622년(광해군 14) 전라북도 김제로 전거(轉居)하였다. 김제에서 후진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나수눌의 호는 산정(山亭)으로 나협의 재질종이다. 이이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관직에 나갔으나 광해군 난정에 실망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고봉익의 호는 취죽헌(翠竹軒),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광해군의 난정에 과거를 포기하고 성리학에 몰두하였다. 고봉익유집(柳楫)·조성립(趙成立) 등과 도의로써 교제하였으며, 인조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당시 군량을 모으고 의병을 모집하여 근왕(勤王)하였다. 나처대의 호는 희음재(希音齋)나협의 6세손이며, 나희후의 호는 근구재(謹懼齋)로 나처대의 조카이다.

[변천]

1634년(인조 12)에 세워졌으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었고, 1752년(영조 28) 김제시 하동 지음마을로 이건하였다. 1872년(고종 9)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고, 그 후 1911년 8월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워졌다.

[형태]

사당 앙덕사(仰德祠)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집이고, 강당 혜학당(惠學堂)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와가이다.

[현황]

현재 지음서원에는 이귀·나협·나수눌·고봉익·나처대·나희후 등 6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주벽에는 이귀가 모셔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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