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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197
한자 龜巖書院
영어음역 Guam Seowo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용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원
양식 맞배지붕[사당]|팔작지붕[강당]
건립시기/일시 1827년(순조 27)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사당]|4칸[강당]
측면칸수 2칸[사당]|3칸[강당]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지정되지 않음
문화재 지정일 지정되지 않음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구암서원(龜巖書院)에서 주벽으로 모시는 사가(四佳) 황거중(黃居中)의 신도비문에 의하면, 황거중우주황씨로 자는 경덕(敬德)이다. 고려 말기 관직에 있으면서 경학을 통해 도를 이루는 데 힘썼다. 조선 왕조 창업에 동참하여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개국 공신으로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었다. 이때 황거중은 유학을 진작시키고자 풍속은 향리에서부터 비롯되니 경서에 밝고 행실도 단정한 인재를 가려 고을에 교수·훈도를 둘 것을 조정에 건의하였다. 이에 즉시 주·군에 시행하라는 윤허가 내려졌으니 유학교도나 유학훈도란 이름이 이때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구 족보의 기록에 1394년(태조 3) 원로 잔치에 태조가 친히 동참하고 취하여 황거중과 함께 춤을 추었는데, 화공에게 명하여 그림을 그리라 하고 어포·어대·은병·은술잔·대무도를 상으로 내렸다. 또한 공조전서를 삼고 다시 호조판서를 내렸다고 전한다.

[변천]

구암서원은 1827년(순조 27)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구암서원이 위치한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는 옛날 우주황씨의 집성촌으로, 중시조인 개국 공신 황거중은 죽은 지 약 400여 년 뒤인 1842년(헌종 8) 구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이곳에는 황거중을 주벽으로 하여 지역의 명현들인 행은(杏隱) 황응청(黃應淸),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 동계(棟溪) 황극효(黃克孝), 겸암(謙庵) 정복환(鄭福煥) 등이 종향되어 있다. 1868년(고종 5) 철폐된 후 1902년(고종 39) 지금의 자리에 단을 설치하여 중건하였고, 1967년 단이 있던 자리에 사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이고,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