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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248
한자 宋廷耆旌閭
영어의미역 Jeongryeo of Song Jeonggi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산 11-4[청운4길 87-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진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797년(정조 21)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산 11-4[청운4길 87-3]지도보기
소유자 송계주
문화재 지정번호 지정되지 않음
문화재 지정일 지정되지 않음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송정기의 정려.

[개설]

금구면 청운리 불로마을에 있는 낙양사(洛陽祠)여산송씨 소윤공파 석성공파 재실(齋室)로, 효자인 죽계(竹溪) 송정기(宋廷耆), 백재(柏齋) 송정구(宋廷耈), 송정(松亭) 송정모(宋廷模) 3형제를 모시는 사당이다. 송정기는 부모가 병으로 눕게 되자 정성껏 병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끝내 부모가 돌아가자, 3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정성으로 돌보았는데 이때 호랑이가 보살폈다고 전한다. 묘의 둘레에 소나무를 심으니 울창하게 되었다. 지방 유림들이 이러한 효행을 임금께 아뢰어 1797년(정조 21) 벼슬과 이름을 적은 기를 받았다.

[위치]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산 11-4번지[청운4길 87-3]로, 불로마을 보건소에서 동쪽으로 약 20m 가면 마을의 중간 지점에 여산송씨 재실인 낙양사가 있는데, 그 안에 송정기 정려가 위치하고 있다.

[변천]

정려각은 1797년(정조 21)에 건립했고, 비석은 1966년에 세웠다.

[형태]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팔작 지붕이며, 정려각 안에 석비가 있다.

[현황]

낙양사 안에는 묘정비와 중건비가 있으며, 여산송씨 인물을 기리는 곳이라 효자 송정기 정려각을 비롯해서 춘정 송동만과 석강 송동구 효행비, 송상윤 처 절부 김씨와 서인 태인경씨 절행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송정기 정려 편액에는 ‘효자통덕랑송정기지려(孝子通德郞宋廷耆之閭)’라고 쓰여 있고, 정려기문과 효자 죽계송공정려 중건기가 있다. 뒤쪽에는 금구현감 성정주가 지은 시가 전한다.

낙양사 솟을대문 우측 작은 문 앞에는 가락 김형재가 글을 짓고 여산 송성용이 예서로 쓴 ‘춘정송공동만석강송공동구(春汀宋公東萬石崗宋公東九)’ 효행비와 방손 송계칠(宋桂七)이 전서로 쓴 ‘송공상윤처절부김씨지려(宋公象尹妻節婦金氏之閭)’의 석정려가 있다. 또 전북대학교 명예교수인 이강호가 글을 짓고, 전면 글씨는 방예(傍裔)인 송성용이, 후면 글씨는 방예인 송명석이 쓴 ‘단인태인경씨절행기적비(端人泰仁景氏節行紀蹟碑)’가 있다.

[의의와 평가]

김제에 입향한 여산송씨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9세손 송륜(宋倫)을 낙향조로 하는 불로파(不老派)와 시조로부터 9세인 송복(宋復)을 낙향조로 하는 역구다리[백산 요교]파가 있다. 이 중 여산송씨 9세 송륜은 문과에 올라 계공랑 광흥창릉을 지낼 때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아들인 송극창과 함께 김제 금구면 낙성리 사방마을로 은거하였고, 송득창의 자손들은 이웃 불로마을에 터를 잡고 종손이 대대로 이어 내려오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이에 불로파는 불로마을의 낙양사를 중심으로 많은 효자와 열녀 및 절부를 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