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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316
한자 天道敎
영어음역 Cheondogyo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지도보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용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종교

[정의]

1905년 교조 손병희(孫秉熙)가 동학을 계승하여 개칭한 종교.

[개설]

동학은 1860년 경상북도 경주의 유생 최제우(崔濟愚)에 의하여 창시되었다. 그는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을 구제해 내겠다는 결심으로 이름을 제선(濟宣)에서 제우로 고치고 호를 수운(水雲)이라 하였다. 당시의 정계는 외적의 침입으로 국권이 침탈되는 위기에 직면했으며, 종교계는 유불선(儒彿仙) 등 기성 종교가 부패하였으며 서구의 기독교가 유입되어 우리의 고유한 도덕과 전통이 말살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개탄한 최제우는 외세의 침입을 제어하며 국기(國基)를 바로잡고 도덕을 바로 세워 불안과 도탄에 빠진 민생을 제도할 대도를 구하여 양산 춘수산 암굴에 들어가 수도한 끝에 1860년 그의 나이 37세에 천명(天命)으로 동학(東學)이라는 학명(學名)과 천도교(天道敎)라는 교명(敎名)을 받고 동시에 영부(靈符)와 주문(呪文)까지 받아 포교를 시작하였다.

교조 최수운은 포교의 확장을 위해 교체(敎體)의 조직으로 접주(接主) 제도를 두었다. 즉, 각 지방에 접소(接所)라는 포교소를 두고 지방의 도인(道人) 중에 덕망 있는 자를 뽑아 접주로 임명하여 접소 관내의 강도(講道)와 포교를 담당하게 하였다. 접주 위에는 접주를 통솔하는 도주(道主)를 두었다. 이 접주 제도는 2세 교주 최시형이 더욱 조직적으로 정비했다.

[변천]

2세 교주 최시형에 의해 더욱 조직적으로 정비된 교단 조직을 살펴보면, 교인의 일단을 포(包)라 하여 포주(包主)를 두고 그 위에 접주, 대접주, 또 그 위에 도주, 대도주(大道主)를 두었다. 포, 접주의 산하에는 육임(六任) 제도를 두어 교장, 교수, 교집, 집강, 대중, 중정 등을 임명하고 중앙에는 법소(法所)를 두고 지방에는 도소(都所)를 두었다.

접주 자격은 포교 능력에 따라 점수를 매겨 부여하였는데, 포교 인원 105명 이상인 사람은 접주, 500명 이상은 대접주가 되는 자격을 부여했다. 대도주는 4인으로 하여 법(法), 성(誠), 경(敬), 신(信)의 네 자를 이름 머리에 붙여 법대접주(法大接主), 성대도주(誠大道主), 경대도주(敬大道主), 신대도주(信大道主)로 불렀다.

이 제도는 동학혁명 후에 최시형이 죽자 구심점을 잃어 분파의 씨가 되었고 교단의 체제도 각기 달라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천도교가 친일 세력에 동조하는 신파와 이를 반대하는 구파로 갈라져 대립하다가 해방 이후 대립이 노골화되자 한때는 구파들이 탈퇴하여 전국의 본부를 임실에 두고 활동하였다. 현재 임실읍에는 천도교 본부로 쓰던 건물이 남아 있다.

천도교 김제교구는 1894년 김제군 김제읍 용동리에 교구장 임여옥(林汝玉)이 설치하였다. 1924년 교구장 정호중(鄭浩仲)이 김제군 월촌면 입석리[지금의 김제시 월촌동]로 교구를 이전하였으며 1959년에는 김제시 옥산동으로 이전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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