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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뼈를 묻은 벽골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716
영어의미역 Byeokgolje Buried Horse Bon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이윤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토건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산신령|스님|마을 사람들
관련지명 포교리|월승리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산신령의 예언|푸른 뼈의 정체를 밝혀준 스님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서 벽골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말의 뼈를 묻은 벽골제」는 옛날 부량면 포교리에서 월승리에 걸쳐 제방을 쌓을 때에 푸른 뼈를 넣어 벽골제를 건설했다는 토건유래담이다. 벽골제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라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흘해왕 21년 조에 ‘시개벽골지안장일천팔백보(始開碧骨池岸長一千八百步)’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백제 영토였으므로 330년(백제 비류왕 27)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제방은 축조 과정에서 많은 전설이 서린 야사를 남기고 있는 바, 말의 뼈를 묻은 벽골제 설화도 그 한 예라고 하겠다. 산신령의 예언과 스님의 단서가 매우 과학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뼈의 주성분인 인이 흙을 단단하게 한다는 사실로 볼 때 당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설화라고 할 수 있다.

[채록/수집상황]

1975년 충남대학교 박물관 팀에 의해서 벽골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로 인한 성과는 벽골제의 시축 연대에 관한 과학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부분적인 축조 방식도 밝혀졌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최대 저수지로 다른 저수지에 비해 비교적 원형이 남아 있어서 문화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단야의 설화」와 같이 「말의 뼈를 묻은 벽골제」 이야기는 벽골제의 축조가 그렇게 수월한 것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말의 뼈를 묻은 벽골제」는 김제 지역 향토학자인 정진형이 채록한 것이다. 그 내용은 전라북도 문화관광정보[http://www.gojb.net]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벽골제 축조에 관한 전설을 통해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대단하였음을 알 수 있다. 벽골제가 축조된 이곳은 바다에 연한 곳이었기 때문에 9번이나 제방을 쌓아도 모두 무너져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제방 쌓는 일을 걱정하고 있을 때 산신령이 나타나서 푸른 뼈로 제방을 쌓으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거의 동시에 같은 꿈을 꾸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마침내 푸른 뼈를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은 푸른 뼈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마을 사람들은 제방공사도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한 스님에게 푸른 뼈의 정체를 물었더니 그 스님께서 푸른 뼈는 말의 뼈라고 알려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말의 뼈가 푸른색임을 알고 난 후 말의 뼈를 갈아서 흙에 넣었다. 그리고 그 흙으로 제방을 쌓았더니 제방이 무너지지 않고 잘 쌓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때부터 푸른 뼈를 넣어서 쌓은 제방이라 하여 푸른 뼈 제방, 즉 ‘벽골제(碧骨堤)’라 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말의 뼈를 묻은 벽골제」의 주요 모티프는 ‘산신령의 예언’, ‘푸른 뼈의 정체를 밝혀준 스님’ 등이다.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 토목공사였고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마침내 산신령의 조언과 스님의 가르침으로 위기를 벗어나 제방을 완공시킨 벽골제 유래담이다. 산신령이 예언해 준 푸른 뼈를 넣어서 제방을 쌓으라고 하는 말과 스님이 푸른 뼈는 말뼈의 주성분인 것을 지시하는 모든 과정에서 당시 선인들의 과학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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