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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가운데 덩그랗게 놓인 청동기시대 고인돌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B020205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갑표

금산면 청도리 633번지 일대에는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 양식인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은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르는데, 영어로는 돌멘(Dolmen)이라고도 한다. 고인돌을 족장을 포함한 옛 사람들의 무덤이라고 보기도 하고,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을 나타내는 기념석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덤이 있는 곳에 커다란 고인돌을 세움으로써 마을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이나 피라미드, 오벨리스크 등 이집트나 아프리카 대륙의 각종 석조물과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 카르낙의 열석 등을 모두 거석문화[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구조물을 만드는 것]의 산물이라고 한다.

[옛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다]

고인돌은 형태에 따라 탁자식과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구분된다. 먼저 탁자식은 높은 굄돌을 세우고 그 위에 흔히 뚜껑 구실을 하는 넓은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으로 북방식이라고도 한다. 바둑판식은 낮은 굄돌 위에 뚜껑돌을 올려놓은 것으로 남방식이라고도 한다. 개석식이란 기둥 없이 뚜껑돌만 올려놓은 고인돌이다.

커다란 덮개돌을 옮겨 고인돌을 만드는 데는 훌륭한 기술과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기술과 노동력은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도 고인돌은 먼 옛날 조상들의 삶을 상상해 보게 하는 유적이다.

전북대학교 박물관 팀이 1985년도에 편찬한 『김제지방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에는 동곡마을의 고인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동곡마을 앞에 계단식 논이 있는데, 그 논둑을 따라 4기의 지석묘(支石墓)가 일렬[동북-남서 방향]로 놓여 있다. 1호와 2호는 약 20m 떨어져 있으며 2·3·4호는 각각 2m의 간격으로 놓여 있다. 북쪽에 있는 고인돌 1호를 보면 덮개돌의 길이 470㎝, 폭 185㎝, 두께 73㎝이고, 받침돌은 덮개돌로 눌려 자세히 확인할 수 없고 받침돌이 석곽 형태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정확한 규모 등을 확인할 수 없지만 이전의 자료들을 보면 2호 고인돌은 덮개돌의 하부가 묻혀 있어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으며, 3호 고인돌은 길이 365㎝, 폭 208㎝, 두께 110㎝로 받침돌이 묻혀 있는 상태이고. 4호 고인돌은 길이 265㎝, 폭 160㎝, 두께 135㎝에 받침돌이 묻혀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2009년 현재는 논 가운데에 북방식인 탁자식 고인돌 1기만 남아 있다. 1980년대만 해도 마을 앞 계단식 논을 따라 4기가 위치해 있었는데, 1980년대 논을 경지 정리하면서 3기가 파손되어 없어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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