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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C010201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배해수

과거 한반도 어느 농촌에서건 농사를 짓는 이들의 가장 큰 숙제는 원활한 농수 공급이었다. 가뭄이 드는 해에는 밭작물의 피해도 컸지만 논농사는 물 없이는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늘을 원망스럽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홍수가 들면 개천과 하천에 연하고 있는 논들은 큰물에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소위 천수답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는 논이다. 1970년에 세워진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72~1981]은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지역 개발에 법적 기반을 제공하여 논이 많은 지역에 저수지를 많이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 동진수리조합 설립]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1925년에 ‘동진수리조합’을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징게 맹갱 외얏밋 들’의 농토를 관리하였다.

1940년대에는 경지 정리와 함께 신평천원평천의 물을 쓸 수 있도록 관계 수로가 만들어졌다.

그로 인해 그동안 가장 중요한 물 재원이던 저수지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고, 물 때문에 이웃 간에 다투는 일도 적어졌다.

김제 지역은 일찍부터 천수답이나 저수지에 의존하기에는 턱없이 물이 부족한 평야지인 까닭에 관계 수로가 절실한 곳이었다. 아득한 과거에는 벽골제가 김제 전역에 농수를 공급하던 재원이었다. 쌀 수탈이 목적이긴 했지만 일제에 의해 관개 수로가 정비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됐든 동진수리조합은 일본인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이후 동진토지개량조합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동진농지개량조합, 농업기반공사 동진지사에 이어 2009년에는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로 이름만 바뀌어 그 관리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귀향 전의 일이라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이두영[1931년생] 할아버지는 귀향 이후 물 때문에 벌어진 주민들과 동진토지개량조합 간의 갈등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1960년대 가뭄이 들어 마을 논에 물을 댈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개천의 물은 내촌에도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동진토지개량조합은 물을 멀리 광활까지 보내야 한다는 이유로 날짜를 정하여 수로를 개방했다.

그러나 타 들어가는 논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 마을 주민들이 삽을 들고 거칠게 항의하여 마을의 논에 물을 댈 수 있었다. 당시 인근 수월리 근처의 원평천 지류 수문에서 천막을 치고 지키던 동진토지개량조합 감시소로 몰려가서 수문을 깨 버린다고 하자 지키던 감시원들은 자리를 피했고, 얼마 후 경찰관들이 왔었다고 한다.

이두영 할아버지의 기억으로는, 동진토지개량조합에서 주민들에게 필치 당 얼마 정도 수세를 할당하여 가을철 공판 때 나락이나 돈으로 받아갔다. 이른바 수세 명목으로 납부해야 했던 농조세는 주민들의 지속적인 항의에 의해 1980년 초 없어졌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보면, 동진수리조합에서 농수로를 만들어 지역민들에게 물을 공급함으로써 지역 농업을 발전시킨 점은 인정된다. 이렇듯 동진수리조합은 빼앗긴 농토의 가슴 아픈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동시에 보여 주는 과거사이다.

[농사꾼에게 물은 그냥 물이 아니고 생명수]

1980년대까지도 비가 오는 날이면, 산간 농촌 어느 지역이든 서로 제 논에 먼저 물을 대려다 주민끼리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비일비재했다. 옛말에 “논의 물꼬 싸움은 부자지간도 없다.”고 할 정도로, 논농사를 짓는 농부에게는 물이 생명수와 같아서 가뭄철에 제 논에 물을 대는 일만큼은 누구한테도 양보할 수 없는 투쟁이었다.

이 물꼬 싸움은 친한 주민끼리도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정도로 갈등이 깊어지는 요인이 되곤 했었다. 과거의 내촌마을도 논농사를 위주로 하는 평야 지대였으므로 농민들에게 물은 가장 중요하고도 절실한 문제였다.

이수근[1943년생] 씨는 중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초 주민들끼리 물 때문에 다투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고 전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논들이 완전하게 경지 정리가 되지 않았고, 농수로도 지금처럼 시멘트로 마무리되지 않아서 큰똘에서 물을 끌어와야 했다.

마을 농지로 흘러드는 물길을 ‘내똘’이라 불렀는데, 2007년까지 흙 제방이었다가 2008년 시멘트로 옹벽 시설을 마쳤다.

[농약 사용으로 인해 기억에만 남아 있는 생명들]

김제 만경 지역은 한반도 서해안에 연접한 평야 지대로서 만경강은 북쪽의 경계가 되고 남쪽으로는 동진강이 흐른다. 그 사이로 모악산과 운암면 옥정호에서 발원한 젖줄과도 같은 물이 원평천신평천으로 이어져서 김제 만경평야지에 물을 공급하여 비옥한 농토를 만들었다. 운암면 옥정호에서 칠보를 거쳐 흘러온 맑은 원평천의 지류는 마을 근처 작은똘로 이어졌는데, 여기에는 민물새우, 참게, 가물치 등 여러 종류의 민물고기들이 물풀 속에 살았지만 농약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취를 감추었다고 전한다.

[정보제공]

  • •  이두영(남, 1931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웃몰 주민)
  • •  정인곤(남, 1932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노인회장)
  • •  이수근(남, 1943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큰뜸 주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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