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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C010203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해수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내촌마을에는 모내기철이면 ‘단’이라 부르는 일모임이 있어 일을 분담하여 모내기를 하였다.

논의 면적이 넓기 때문에 바쁜 모내기철에는 편을 나누어야 제철에 농사일을 마칠 수 있었다. 단은 보통 20여 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되었는데, 내촌마을에는 웃단, 큰뜸단, 너머뜸단, 그렇게 3개의 단이 있었다.

단장은 나이가 좀 들고 활동력이 있는 사람이 맡았다. 단장은 일을 가져오고, 일의 순서를 배분하는 등의 일을 했다. 단장은 다른 말로 ‘못줄잡이’라고도 불렀으며, 평소에는 일반 주민과 같으나 모내기철만큼은 권한을 부여받아 사람들을 통솔했다.

모 심기 전의 전통적인 과정을 보면, 각자 일에 걸맞게 역할이 분담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 주민 이수근[1943년생] 씨의 기억을 종합해 보면, 오래전 시골 마을의 전통적인 모내기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모 심는 것도 동네잔치]

못자리에서 모를 찌는 역할[모찌기·못찟기]은 비교적 힘이 덜 들어 주로 아낙네들이 하고, 모를 심을 논에 물을 대고 소 쟁기 써레질은 일반적으로 그날 모내기할 논의 임자와 다음 차례의 논임자가 함께 했다. 지푸라기로 묶은 못단을 지게바작으로 실어 나르는 역할은 힘깨나 쓰는 마을 장정들이, 써레질이 끝난 논에 군데군데 못단을 던지는 역할은 농사 경험이 풍부한 노인들이 함께 했다.

여기까지 준비 과정이 끝날 때쯤이면, 아이들 손에 물과 술 주전자를 들리고 넓은 쟁반을 머리에 인 아낙과 채반을 든 할머니가 개를 앞세우며 논둑길에 들어선다. 소위 샛거리, 또는 새참이라 불리는 간식거리는, 만들고 운반하기 쉬우며 먹기도 간편한 국수가 대부분이었다.

막걸리와 곁들인 샛거리가 끝나면 점심때까지 쉬지 않고 모를 심었다. 못줄은 허리를 숙이기 힘든 노인이나 못줄잡이 단장이 직접 잡았고, 바쁠 때는 모내기를 한다고 학교를 조퇴한 어린 학생이 잡기도 했다.

누가 빨리 많이 심나 경쟁도 하고, 모를 먼저 심고 나서 못줄을 튕겨 흙탕물이 옷과 얼굴에 튀기게 하는 것은 젊은 총각들이 부녀자들을 상대로 곧잘 하는 장난이었다. 한창 모내기로 힘이 들면 구성진 노랫가락이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여기저기서 추임새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선창과 합창이 너른 들녘을 적셨다.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는 왁자지껄한 모내기 풍경은 1970~1980년대까지도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의 가장 큰 잔치이자 축제였다.

[정보제공]

  • •  이두영(남, 1931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웃몰 주민)
  • •  이수근(남, 1943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큰뜸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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