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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세 마리가 마을 전답을 다 일궜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C020202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해수

내촌마을에서는 동물을 거의 키우지 않는다. 그 때문에 마을에 들어서도 개짖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마을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 서로 가금류를 사육하지 않기로 묵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 이사를 온 한 주민이 진돗개를 3마리 정도 사육하고 있다. 처음에는 여러 마리를 키웠는데 주민들이 마을 사정을 설명하여 수를 줄였다고 한다.

[소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기계들]

농기계가 없었던 시절 평야 지대인 내촌마을에는 끝없이 펼쳐진 논을 갈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소였다. 소는 때때로 운송을 하는 수단으로서도 매우 유용한 존재였다. 2009년 현재 노인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정인곤[1922년생] 할아버지의 기억에는 농기계가 들어오기 전 마을에 소가 3마리 있었다고 한다. 이 소들이 마을 전답의 대부분을 일구었다.

1973년 처음으로 정복현 씨 소유의 경운기가 마을에 들어왔고, 이어서 모를 기계로 심는 이앙기도 들어왔다. 그리고 기계가 들어오면서 마을에서 소는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다.

산간 농촌에 비해 드넓은 평야지로 벼농사를 주로 하는 내촌마을의 경우 기계화로 전환되는 속도가 비교적 빨랐다.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경운기와 이앙기 값이 비싸서 마을 사람 모두가 사서 사용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모내기철만 되면 일손이 부족한 사람들은 다투어서 이앙기를 예약했는데, 이 경우 이앙기만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소유자까지 임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덕분에 이앙기 주인은 농사일을 편하게 하려고 남보다 빨리 이앙기를 들여왔건만 오히려 날이 밝아오는 새벽까지 모를 심어야만 했다. 모두가 바쁘게 일해야 하는 모내기철에 이앙기 있는 사람만 몸살을 앓도록 바빠서 오히려 빌리는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옛 풍경이 사라진 농촌의 들녘]

경운기가 들어온 1970년대 후반부터 채 30년이 안 되어 전통 방식의 논농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3마리의 소가 경작하던 논을 트랙터 몇 대가 대신하고 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논배미 둑길에 모여서 막걸리를 들이켜며 모내기하던 풍경은 이제 노인들의 기억에만 희미하게 남아 있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다른 것들이 다 봄추위에 얼거나 마른다 해도 못자리만큼은 목숨 자리처럼 애지중지 돌보며, 일일이 손으로 뽑아 못단을 만들던 번거로웠던 일이 지금은 네모반듯한 모판을 실은 이앙기 몇 대면 가능하다. 추수의 계절 가을의 풍성한 황금 들녘에는 커다란 콤바인 한 대가 순식간에 벼를 베어 커다란 부대에 알곡만 분류하여 담아 놓는다. 남은 볏단은 두 종류로 분리되는데, 직사각형으로 압축하여 쌓거나, 또는 커다랗게 뭉쳐져 하얀 공룡의 알처럼 텅 빈 겨울 들판을 뒹굴고 있다.

[정보제공]

  • •  이두영(남, 1931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웃몰 주민)
  • •  정인곤(남, 1932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노인회장)
  • •  김분순(여, 1933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웃몰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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