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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팔러 가면서 많이 울었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C030108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해수

바람도 없이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내촌을 찾아가는데 동네 어귀에 위치한 집 은행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1인용 평상에 누워 은행나무가 드리우는 그림자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청하자 처음에는 휴식을 방해한 낮선 방문객이 달갑지 않은 듯하였지만, 잠시 후에 그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스물네 살에 내촌으로 들어왔어]

정판규[1921년생] 할아버지는 내촌마을 주민들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 연로한 탓에 말이 어눌하고 기력도 쇠퇴한데다 귀가 어두워 많은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과거에 대한 경험은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여 오래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스물네 살 젊은 나이에 내촌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살아왔기에 할아버지는 마을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다.

정판규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은 김제시 봉남면 사정리이다. 집안이 가난한데다 형제들이 많아서 어릴 때부터 먹고살기가 힘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일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마침 일가친척이 있는 내촌으로 들어온 뒤 마을 출신 16세 처자 박인순[1928년생]과 혼인하여 내촌마을 사람이 되었다.

이후 할아버지는 부인과 함께 아들 셋과 딸 넷, 일곱 남매를 낳고 힘들게 키워서 모두 결혼시켰지만, 모두 타지에 살고 있어 자주 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대화 중 “걍 암시랑토 안 혀.”라는 반어법을 되풀이해서 쓰는 것을 듣노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주 찾아오는 자식이 없는 서운함을 애써 감추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애들 교육시키려 별걸 다했지]

그동안 고생하며 살아온 정판규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궁핍한 생활을 해결하려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내촌에서 남의집살이를 시작으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다. 그 덕에 딸은 초등학교, 아들들은 중학교 이상을 보낼 수 있었다.

당시에 이 정도까지 자식들을 모두 교육시키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하루 일하고 받은 품삯이 그때 돈으로 15원에서 20원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에 15원이면 쌀 한 가마니 값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해서 번 돈을 1원도 허투로 쓰지 않고 모으고 불려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이 많다 보니 농사일로 버는 것이 부족하여 할아버지는 아예 장사를 시작했다.

고창이나 정읍, 순창, 때로는 멀리 전라남도 장성까지 가서 소를 사다가 전주와 군산의 소시장에 내다 팔았다. 가는 길만 70리로, 왕복 150여 리를 2~3일씩 걸어가서 소를 사고 되팔러 다니다 보니, 인근 소시장은 안 가 본 곳이 없었다.

고무신이 다 헤지고 진탕길이 많아 맨발로 좁은 논두렁을 걷다가 소가 논둑에 빠져 간신히 꺼낸 적도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죄로 배우지 못한 한이 크고 세상살이가 너무 고단하여 눈물을 훔치면서도 커 가는 자식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그나마 정판규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학교에도 보낼 수 있었지만, 없는 사람들은 학교는커녕 식구들이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로 힘들었던 세월이었다고 회상한다.

[우리만 남았으니 기대면서 살아야지]

이제까지 살아온 날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지만, 늙어서도 자식들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아갈 자신이 있다고 하는 할아버지의 말이 왠지 적적하게 들렸다. 할아버지는 고향 마을로 돌아와서 부모와 살 자식들에 대한 미련이나 기대는 갖고 있지 않다고 반복하여 말하면서도 말년의 쓸쓸한 소회를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평생 함께 살아온 할머니가 곁에 있어 늙고 쇠약하지만 외롭지 않다는 말씀은 빠뜨리지 않았다.

“둘 중에 누군가 먼저 떠날지 모르지만 먼저 가는 사람 따라가야지. 인제 그거밖에 없어.”

무엇보다도 어려웠던 날들을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기에 지금까지 살아 있다며, “촌에서야 여기저기 다 빈집이거나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지. 홀할아버지 혼자 살 수 있나. 세상 떠나도 내가 먼저 가야지 안식구가 먼저 가면 더 살고 싶지 않아.” 하며 말년 부부의 정을 이야기한다.

정판규 할아버지와 박인순 할머니가 사는 모습은 젊은이들이 다 떠나고 노인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는 오늘날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듯 힘들게 살아온 삶의 노정을 되돌아보는 정판규 할아버지의 모습은 뜨거운 여름날의 햇빛을 가리고 서 있는 은행나무 그늘을 닮아 있었다.

[정보제공]

  • •  정판규(남, 1921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재너머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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