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464 |
---|---|
한자 | 扶餘 間諜 事件 |
이칭/별칭 | 부여 무장 공비 침투 사건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규완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95년 10월 24일 - 부여 간첩 사건 발생 |
---|---|
종결 시기/일시 | 1995년 10월 27일 - 부여 간첩 사건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정각사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354 |
종결 장소 | 신암리 야산 - 충청남도 부여군 조촌면 신암리 |
[정의]
1995년 10월 24일 충청남도 부여군에 무장간첩이 침투한 사건.
[개설]
부여 간첩 사건은 1995년 10월 24일 충청남도 부여군에 무장간첩 2명이 침투하여 긴급 출동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사건이다. ‘부여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이라고도 한다. 부여 간첩 사건으로 경찰관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역사적 배경]
1990년 남파된 김동식은 1966년에 남파되어 24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고정간첩으로 활동하던 이선실을 1990년 북한으로 복귀시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김동식은 5년 후인 1995년 8월 29일, ‘봉화 1호’로 불리는 고정 간첩계의 거물을 북한으로 복귀시키는 임무와 대한민국 내 고정간첩들과 종북 운동권 활동가들을 지도하고 지원할 목적으로 박광남과 함께 다시 남파되었다.
그러나 봉화 1호는 승려로 위장하여 종교 단체를 포섭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1980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검거된 뒤 포섭되어 ‘역(逆)공작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정보 기관에서는 고정간첩의 무전기를 이용하여 “봉화 1호가 나이 들어 더는 활동하기 어려우니 북으로 귀환하기를 바란다”라는 위장 전문을 북측에 보냈다. 장소를 특정하라는 북측의 회신에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에 있는 정각사를 지정하였다.
이후 서울시경찰청과 국가안전기획부 요원들을 주축으로 잠복·체포조가 구성되었고 1995년 4월부터 처사와 승려, 등산객 등으로 위장하여 정각사와 정각사 입구 빈집에서 잠복에 들어갔다. 그러나 접선하는 날짜와 시간, 인물을 사전에 정해 주지 않아 수개월 간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 간첩을 기다려야 했다.
[경과]
잠복 7개월 만인 1995년 10월 24일 김동식과 박광남이 봉화 1호와 접선하기 위하여 정각사를 찾았다. 잠복 중이던 서울시경찰청 경찰들은 남파 간첩임을 알아채고 체포 작전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김동식과 박광남은 총격을 가하며 정각사를 벗어나 인근 태조봉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신고를 받은 부여 경찰과 32사단이 투입되었다.
도주한 김동식과 박광남은 1995년 10월 24일 오후 4시경 도로에서 차량을 탈취하려다가 출동한 부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부여 경찰 나성주 순경과 장진희 순경이 간첩이 쏜 총에 총상을 입고 순직하였고, 송균헌 경사가 어깨에 총상을 입었다.
김동식은 장진희 순경과 몸싸움을 벌이던 과정에서 다리 관통상을 입고 현장에서 생포됐고, 도주한 박광남은 1995년 10월 27일 부여군 조촌면 신암리 야산에서 육군 203 특공여단과 대치 중 총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 날인 10월 28일 사망하였다
[결과]
순직한 나성주 순경과 장진희 순경은 2계급 특진으로 경사가 되었다. 부여군에서는 두 경찰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1997년 12월 10일 부여 대간첩 작전 전적지 현장에 경찰충혼탑을 건립하고 매년 10월 24일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