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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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居翼-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 산15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행묵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김거익의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2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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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거익의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김거익의묘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김거익의묘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 산15 |
성격 | 능묘 |
관련 인물 | 김거익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김거익의 조선 전기 묘.
[개설]
김거익의묘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 조성된 김거익(金居翼)의 묘이다. 김거익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퇴암(退庵)이고 고려 때 좌복야(左僕射)를 지냈다. 의성군(義城郡)에 봉해진 김용비(金龍庇)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태권(金台權)이고, 형은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김거두(金居斗)이다. 김거익은 성균관악정(成均館樂正)을 거쳐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교류하며 혼인 관계를 맺었으며, 태조 이성계와도 절친한 사이로 전한다. 김거익은 조선이 건국되고 우의정을 제안받았으나 절의를 지키기 위하여 거절하고 고향인 부여로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김거익의묘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위치]
김거익의묘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 산15번지에 있다. 묘 입구에는 1928년 건립된 재실 부양재과 김거익의 절의를 추모하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형태]
김거익의묘는 봉분 앞쪽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양옆에는 비석과 장명등이 배치되어 있다. 비석 옆에는 나중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 1기가 나란히 있다.
[금석문]
김거익의묘 봉분 앞 오른쪽에 있는 비석에는 ‘고려정당문학의성김공거익지묘 앙좌(高麗正堂文學義城金公居翼之墓 卬坐)’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현황]
김거익의묘 입구에 조성된 부양재와 신도비는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2020년 4월 3일 부여 부양재 및 신도비로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최근까지도 후손들에 의한 제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보존 및 관리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김거익의묘는 부여 지역에 은거하여 절의를 지키며 살아간 김거익의 묘와 재실, 신도비 등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사료적·고고학적 가치가 크다.